퓨처스의 이명호 발행인과 윤기영 편집인은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님과 함께 귀한 점심 자리를 가졌습니다. 아흔이 넘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장관님은 4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평생을 언론인과 공직자, 미래학자로 살아오며 쌓아온 인생의 경험과 국가의 미래에 대한 깊은 걱정, 그리고 이를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혜안을 아낌없이 들려주셨습니다. 장시간에 걸친 인터뷰는 2회에 걸쳐 게재됩니다.

현재 집필 중인 《AI 특이점 시간 - 대한민국 자강 전략》의 원고 일부를 보여주며 말씀을 하고 계시는 김진현 전 장관님

현재 집필 중인 《AI 특이점 시간 - 대한민국 자강 전략》의 원고 일부를 보여주며 말씀을 하고 계시는 김진현 전 장관님

Q1.최근인공지능이이미인간의지능을추월한것이아닌가하는논란이있습니다. ‘특이점’시대가오면우리인류는어떤운명을맞이하게될까요?

A: 이제는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레이 커즈와일이 말한 특이점에 따르면 인간은 그저 생물학적인 존재에 불과하게 될지도 몰라요. 우리 정신도 유전자가 진화하며 결정된 건데, 이제는 초지능이 그 유전자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으니까 인간보다 만 배나 뛰어난 존재가 나오는 세상이 올 겁니다. 이건 단순히 문명이 바뀌는 수준이 아니라, 7만 년을 이어온 사피엔스 종이 변종되느냐 소멸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선 겁니다.

그런 세상이 오면 그건 더 이상 인간이 주인인 세상이 아닐 거예요. 초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인류 문명은 그걸로 끝장나는 겁니다. 160억 년 전의 빅뱅이 우주의 시작이었다면, 이제는 인간이 만든 ‘지구의 빅뱅’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죠. 이건 인류가 수만 년 동안 쌓아온 수렵, 농업, 근대의 문명 진화 과정을 완전히 깨뜨리는 사건입니다.

인간을 유전공학의 부품 정도로 여기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저 주어진 걸 뺏어 먹으며 연명하는 존재로 전락할 겁니다. 내가 나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타자가 나를 지배하게 되기 때문이죠. 유발 하라리는 이를 ‘쓸모없는 사람들’과 ‘신이 된 인간’으로 구분했는데, 그는 사피엔스 종의 소멸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만든 초지능을 스스로 조작하지 못하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고, 이제 문명은 인간과 인조 초지능, 자연이 함께하는 ‘3자 공생’의 시간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 이후 약 16만 년간 집단생활을 하며 역사적 진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동물을 넘어 질서 있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도덕성과 윤리성이라는 소중한 ‘인간성’을 축적해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Q2. AI시대를뒷받침할막대한전력소모와데이터처리문제를해결하기위해전략이필요합니까?

A: 요즘 AI 기업들은 엄청난 전기를 감당하려고 직접 원자로를 가지려고까지 합니다. 소형 모듈 원자로(SMR)를 넘어 결국 핵융합으로 결론이 날 것 같은데, 여기에는 양자 과학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데미스 하사비스가 말했듯이 플라스마를 가두는 알고리즘만 설계할 수 있다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텐데, 지금의 계산 능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100만 개 단위의 큐비트를 가진 양자 컴퓨터가 나와야 제어가 가능해질 겁니다.

일론 머스크는 아예 모든 연산 시설과 데이터센터를 우주로 보내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어요. 우주에서 미국 전역 전력 소비량의 절반이나 되는 300기가와트 규모의 발전을 하겠다는 건데, 이걸 위해 위성 100만 개를 띄우겠다고 허가 신청까지 냈습니다. 지금까지 쏜 위성이 2만 5천 개 정도인 걸 생각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죠. 머스크뿐만 아니라 구글과 아마존도 경쟁적으로 우주 데이터센터를 계획하고 있는데, 이건 인류 역사상 최초의 거대한 우주 산업 활동이 될 겁니다. 중력이 없는 우주 환경은 바이오 산업에서도 훨씬 효율적이고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중국도 이미 오래전부터 우주 연구에 매진해 왔습니다. 제가 1990년에 과기처 장관이 되고 1992년 수교 직전에 정식 초청을 받아 중국을 방문한 최초의 국무위원이었는데, 그때 중국 과기부 장관은 벌써 태양에서 헬륨을 가져와야 한다며 우주를 강조하더군요. 중국은 2035년까지 우주 과학기술 단지를 만들어 에너지를 생산하고 지구로 전송하겠다는 계획을 당당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Q3.대한민국이겉으로는화려한선진국이되었지만,장관님께서보시는우리사회의본질적인위기는무엇입니까?

A: 통계로 보면 대한민국은 분명 선진국이고 문화적으로는 초선진국 수준이죠. 하지만 내실을 보면 공동체 의식이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혈연이나 이익만 따지는 원시적인 공동체는 살아있지만,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도덕적 공동체 의식은 희박해요. 오죽하면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자녀를 논문에 올리는 그런 도덕적 해이가 벌어지겠습니까.

본원적인 도덕성이 되살아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지금 세계를 덮고 있는 사악한 막장 정치, 즉 ‘최악당 정치(Kakistocracy)‘는 인간성이 사라졌을 때 AI 기술보다 더 무서운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저는 6.25 전쟁이라는 말세를 직접 겪으면서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했었지만,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최대의 성공을 일궈냈습니다. 그래서 아직 희망을 버리지는 않습니다.

공동체를 살아나게 하는 건 결국 인간 특유의 도덕성과 윤리성입니다. 이게 무너지면 가족도, 기업도, 국가도 다 무너지는 법입니다. 우리는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고 핵 보유국에 포위된 유일한 비핵 국가인데, 식량 자립도는 꼴찌 수준이면서 위기의식조차 없어요. 이제는 새로운 특이점 기술을 써서라도 이 지리적인 제약을 극복하는 ‘자강(自强)‘의 길로 가야 하고, 우주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실험 같은 담대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Q4.공동체의식의부족이국가정체성과안보의식에어떤영향을미치고있다고보십니까?

A: 우리 국민들은 각자 자기 안위에는 밝지만, 공동체에 대한 고민은 너무 부족합니다. 재벌들도 국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하는데 골목 상권까지 침해하는 게 현실이죠. 가장 심각한 건 대한민국에 ‘건국 기념일’이 없다는 겁니다. 2045년이면 해방 100년인데 여전히 가치와 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어요.

좌우 논리에 밀려 1948년 8월 15일을 ‘정부 수립일’로만 부를 뿐 건국일로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건 지도층의 국가 의식이 얼마나 박약한지를 보여주는 창피한 단면입니다. 안보 의식도 마찬가지예요. 2017년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정부는 민심이 흉흉해질까 봐 방공 훈련조차 안 했습니다. 자강 의지가 없는 나라는 국제사회에서 존중받을 수 없으며, 이건 우리 지도자들이 정말 깊이 반성해야 할 문제입니다.

Q5.과거 ‘절대부족’시대를뚫고대한민국을세우고도약시킨국가지도자들의정신은****무엇이었습니까?

A: 1960년대 초반만 해도 미얀마나 필리핀이 우리보다 훨씬 유망한 나라였습니다. 반면에 한국은 식량도 자원도 인재도 없는 ‘절대 부족’의 상태였죠. 1965년에 수출 1억 불을 달성하면서 비로소 우리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과 박정희 두 지도자의 역할이 정말 컸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 어려운 시절에도 국가 장학금을 주며 원자력 인재들을 해외로 보냈고, 그게 오늘날 우리 원자력 기술의 뿌리가 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정주영 회장 같은 분들에게 중공업 진출을 강하게 권유하며 국가적 목표를 이끌었죠. 정 회장님이 돈과 기술이 없다고 두 번이나 못 하겠다고 했어도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와 정부의 뒷받침 덕분에 결국 해낸 겁니다. 이런 지도자들의 멸사봉공 정신이 대한민국 거버넌스의 기초를 세운 겁니다.

Q6.한국미래학이처음시작된배경과이한빈선생같은선구자들이가졌던고민은무엇이었나요?

A: 1968년에 한국미래학회가 생긴 건 우리 경제가 도약하는 단계에서 지식인들이 국가 생존을 위해 전략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미래학의 선구자는 단연 이한빈 전 부총리였죠. 그분은 하버드 유학 중에 전쟁이 나자 자진 귀국해 헌신한 분이고, 글로벌 감각이 아주 뛰어난 리더였습니다.

저는 언론인으로서 그분과 깊이 소통하며 국가 생존을 위한 사고를 공유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 만든 ‘2000년의 한국’ 보고서를 보면 인구 추계나 교육 진학률 같은 사회 현상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맞혔습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너무 낙관적인 면도 있었지만, 그건 미래 예측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이기도 하죠.

Q7.당시일본과의교류도많으셨던것으로아는데,일본에대해서는어떻게생각하시나요?

A: 일본 사회를 보면 민주주의 같아 보여도 실상은 행정 명령과 보이지 않는 규율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예전에 한일 관계 해법을 찾으려고 일본 근대 경제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손자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참 훌륭한 글로벌리스트였고 제 제안에 적극 공감하며 협력을 약속했었죠.

그런데 얼마 뒤에 저를 고급 요리집으로 부르더니 무릎을 꿇고 엎드려 사죄하면서 프로젝트를 못 하겠다고 하더군요. 일본 문부성에서 아무 근거도 없는 보고 의무를 내세워 압력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일본이 아무리 선진국이라 해도 관료주의가 개인의 신념과 가치를 얼마나 압도하는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입니다.

Q8.장관님께서시립대총장시절보여주신원칙중심의리더십은공직자에게중요하다고생각하십니까?

A: 1995년 제가 총장으로 갔을 때는 학생 운동이 아주 심해서 총장실 점거가 예사였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취임하자마자 학생들에게 “나는 여러분의 초청으로 왔지만, 잘못하면 반드시 책임을 묻는 사람이다"라고 선언하며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한 게 아니라 직접 지하실 동아리방들을 찾아다니며 수리해주고 컴퓨터를 넣어주는 등 실질적인 복지부터 챙겼어요.

시립대의 정체성을 세우려고 ‘도시과학’을 특성화해서 아시아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비전도 내걸었습니다. 처음엔 연구비 확보에 실패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노력해서 기틀을 마련했죠. 지도자는 단순히 ‘노릇’만 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목적과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자기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Q9.지금의시대를단순한 ‘문명’아니라새로운 ‘시간’으로정의하신이유는무엇입니까?

A: 제 실제 생일과 서류상 날짜가 다르듯, 진실을 안다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미래를 이야기할 때도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경험이 담긴 통찰이 중요하고, 기록된 진실조차 의심해 볼 줄 알아야 하죠. 그래서 저는 이 시대를 기존의 단어 대신 새로운 ‘시간’이라 부릅니다.

인간과 기계, 자연이 공생하는 이 시기는 이전의 역사와는 질적으로 완전히 단절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인조 초지능-자연’의 3자 공생이 시작되는 이 독특한 시간은 우리가 예전에 겪어본 적 없는 관계죠. 지하철에서 다들 스마트폰에만 몰입한 모습은 우리가 도구에 적응은 빠르지만, 그만큼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Q10.대한민국이복합위기를극복하고미래의주인공이되기위해가장필요한것은무엇입니까?

A: 우리나라는 독립 후 유일하게 선진국이 된 성공한 나라지만 지금은 인구 절벽과 공동체 해체라는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특히 2027년은 우리 명운을 가를 중요한 해가 될 거예요. 지금의 지도자들은 과거의 성취에만 취해 있을 게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참회와 성찰의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고 도덕적 우월성을 지켜낼 때만 AI 특이점이나 환경 위기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역동성과 기술을 지혜롭게 쓴다면, 인류 문명의 새로운 장을 여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진현 전 장관님은 현재 집필 중인 《AI 특이점 시간 - 대한민국 자강 전략》의 원고 일부를 보여주셨습니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펜을 놓지 않고 국가의 생존을 고심하는 그 모습에서 노 언론인이자 미래학자로서의 뜨거운 열정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관님이 평생을 바쳐 쌓아온 혜안이 담길 이 책은 문명 전환기의 파고를 넘어야 할 우리 모두에게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