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지성의 파수꾼’이자 ‘미래의 설계자’로 불리는 김진현(金鎭炫, 1936~) 전 과학기술처 장관은 우리 시대의 독보적인 지성인이다. 1960년대 동아일보 기자로 필명을 날리며 한국 언론 사상 최초의 국제 경제 전문기자로 활약한 그는, 박정희 정부의 수출 입국 전략과 경제 개발 계획을 현장에서 가장 생생하게 기록한 목격자였다.
그는 단순히 기록하는 자에 머물지 않았다. 1968년 한국미래학회 창립에 참여하며 국가 생존을 위한 전략적 사고를 제안했고, 노태우 정부 시절 과학기술처 장관(제14대, 1990 ~ 1993)을 역임하며 ‘G7 프로젝트’를 통해 대한민국이 과학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닦았다. 이후 서울시립대학교 총장(1995 ~ 1999), 세계화 추진위원회위원장(국무총리와 2인 공동위원장 체제. 1995 ~ 1998), 문화일보 및 한국경제신문 회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위원장 등 공공과 민간을 넘나들며 사회 공동체의 도덕적 회복과 국가의 장기적 비전 정립에 헌신해 왔다.
구순(九旬)을 지난 나이에도 인공지능(과 우주 산업의 지형도를 그려내며 여전히 미래를 통찰하는 그를 만나,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 의식’과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선진국의 품격’에 대해 물었다.
김진현 전장관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Futures의 발행자인 이명호가 벤처기업의 대부로 평가받던 고 이민화의 인연을 알고 먼저 대화를 이끌었다.
“Futures 발행자가 이민화 회장과 인연이 있었다면서요? 이민화 회장 그분은 우리나라 말하자면 벤처의 시작과 확산을 상징하는 분이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1990년대 초반 한국 풍토에서 그 정도 성과를 냈다는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거예요. 그 이민화 씨 특유의 독특한 개인적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거의 벤처에서 천억 대 매출을 올리기도 했던 그런 기억도 있고요.”
기자: 전에 강남에 사무실을 두셨는데, 지금은 판교에 계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판교에 사무실을 두고 있어요. 내 사무실 안에는 그동안 모아온 미래학회 자료들이 다 들어차 있어요. 여기서 자료를 뒤적이며 연구도 하고 집필 활동도 이어가고 있는데, 창밖으로 판교를 내다보면 참 묘한 기분이 듭니다.
지금 판교 같은 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기가 예전 같지 않고 일종의 공동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나 사람들도 이제는 그 수익을 여기에 떨어뜨리지 않아요. 꼭 필요한 게 아니면 달러를 받아오지도 않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서 벌어들인 돈을 다시 그쪽에다 쓰는 식이죠.
이 격차 문제라는 게 보통 심각한 게 아닙니다. 단순히 서울과 지방의 격차 수준을 넘어서서, 이제는 산업 간의 격차로까지 번졌어요. 증권 시장만 봐도 속이지 못하는 게, 한 3분의 1 정도만 오르고 나머지는 다 떨어지는 형국이거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벤처 기업들도 아마 여기서 성공하면 국내 시장에 상장하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나가서 상장하려고 하겠지, 지금처럼 나라를 믿을 수 없고 사회를 신뢰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는 뻔한 얘기입니다.”
기자: 우리나라 투자 금액에서도 차이가 있다보니 벤처기업이 기업공개를 미국에서 하는 것이 흐름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사회를 신뢰할 수 없는 분위기라하셨는데, 좀 더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정말 기가 차요. 기본적으로 나라를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됐거든요. 도대체 무엇을 믿을 수 있는 게 있나 싶습니다.
최근에 아는 후배가 이번 지자체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하겠다며 공약을 들고 왔는데, 그 내용을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대중교통 완전 무료, 청년·신혼부부 월세 일부 지원, 국제공항 신설, 거기다 기본소득까지 하겠답니다.
도지사나 국회의원, 시장 할 것 없이 이렇게 경쟁적으로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고 있으니 이 나라가 제대로 유지가 되겠습니까? 복지가 표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국가가 성장해야 소득도 커지는 법입니다. 유럽 같은 나라들은 산업혁명 이후 200년 넘는 기초를 쌓고 나서 복지를 시작했는데, 우리는 겨우 가난을 벗어나자마자 이러고 있어요.
결국 가장 큰 문제는 공동체 의식이 완전히 빠져버렸다는 겁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재벌들이나 겉으로는 애국을 말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저 끼리끼리 해먹는 원시적인 혈연 공동체에 머물러 있어요. 대학 교수라는 사람도 제 자식을 논문 공저자로 올리는 식이니, 도덕성이나 사회 정체성이 해체된 셈이죠. 인간만이 남을 위해 목숨도 바치는 도덕성을 가졌는데, 이 도덕성이 해체되면 국가든 기업이든 가족이든 그 공동체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기자: 기본소득은 국가의 생산역량이 되어야 가능할 텐데요, 일부 미래학자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Yubal Harari)는 그의 책 <호모데우스>에서 ‘Useless People’, 일본 번역판으로는 ‘무용 계급’이라 불리는 쓸모없는 인간들에 대해 경고해 왔어요. 하라리가 21세기의 어느 시점이 되면 인류의 90%, 아니 어떤 곳에서는 99.9%까지가 이 무용 계급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봤는데, 이것이 21세기에 직면할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는 얘기지요. 0.1% 내지 1%의 극소수 소득자가 세금을 내면 나머지 99%는 국가에서 주는 기본소득을 받아 놀고먹는 세상이 올 거라는 시나리오입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 성급하게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일론 머스크 같은 이들도 기본소득을 말하지만,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건 노동자를 인간으로 대우하는 게 아니라 그저 굶어 죽일 수는 없으니 던져주는 수준에 불과하거든요. 실제로 노동 현장의 노동조합 같은 곳에서도 이런 식의 기본소득 논의에는 상당히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결국 이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 말하는 특이점의 시대가 와서 초지능이 유전자를 조작하고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가 되는 순간, 세상은 끝난다는 것입니다. 유전공학의 한 부품처럼 인간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미래를 논할 의미조차 사라지게 됩니다. 한쪽은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다른 한쪽은 신이 된 인간인 ‘호모 데우스’가 되어 인간이 인간을, 혹은 자기가 만든 초지능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죠.
결국 내 논리의 핵심은 인간의 ‘도덕성’에 있습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는 동물의 하나가 틀림없으나, 수만 년의 집단생활을 거치며 인간 특유의 사회 정체성과 도덕성, 윤리성을 길러왔습니다. 남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과 같은 인간성 말입니다. 사회 공동체는 이 도덕성이 동물성보다 우월할 때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술이 인간을 넘어서는 시대일수록, 이 도덕성이 해체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자: 도덕성은 인공지능 사회에서 가장 큰 핵심이 될 것이라는 말씀에 무릎을 치게 됩니다. 인류의 문제인 에너지는 어떻게 해결될까요?
“지금 에너지 문제의 종착지는 결국 핵융합으로 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핵융합 상용화의 결정적인 열쇠는 양자 과학와 같은 고도의 기술적 뒷받침에 있어요.
핵융합 발전에서 가장 큰 기술적 장애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그 뜨거운 플라스마를 가두는 일입니다. 만약 이 플라스마를 안정적으로 가둘 수 있는 알고리즘만 설계할 수 있다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죠. 하지만 현재의 컴퓨터 계산 능력으로는 그 복잡한 알고리즘을 만들어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큐비트 단위가 만 단위, 십만 단위, 혹은 백만 단위로 올라가는 고성능 양자 컴퓨터 수준의 연산 능력이 필요합니다. 플라스마 가두기 알고리즘만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다면 핵융합은 실현 가능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입니다.
지금은 토카막(Tokamak) 같은 물리적 장치만으로는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플라스마를 해결하기가 실질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알고리즘을 통해 동적으로 미세하게 조정하고 제어하는 방식이 유일한 해법이 될 텐데, 인공지능이나 컴퓨팅 능력이 그 경계선까지 도달해야 비로소 에너지가 자립되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기자: 큐비트가 백만 단위의 양자 컴퓨터라 하니 어질어질합니다. 일부 미래예측 보고서에서는 2050년대 백만 큐비트 규모의 양자 컴퓨터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더군요. 우주산업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행보를 보면요, 지금 이 사람이 테슬라 자동차 사업 비중은 줄이고 통신과 AI, 그리고 에너지 사업으로 공장을 완전히 구조화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머스크는 이제 지구 안의 데이터 센터는 소규모 동네용이나 남겨두고, 플랫폼 기업들의 거대 데이터 센터는 몽땅 하늘, 그러니까 우주로 보내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하느냐 하면요, 전력이나 데이터 센터 같은 산업이 우주로 간다면 바이오나 의약품 생산까지 다 우주에서 하겠다는 거예요. 실제로 우주 전문 의약 회사가 이미 생겼을 정도로, 우주에서 생산하는 게 전기 비용도 싸고 훨씬 경제적일 거라는 판단이죠. 머스크가 최근에 미 통신위원회에 위성 100만 개를 올리겠다고 정식 허가 신청을 냈는데, 지금 전 세계 위성이 2만 6천 개 정도인 걸 생각하면 그 규모가 정말 상상 초월인 겁니다.
중국도 만만치 않아요. 지구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주에서 태양 에너지를 만들고 전기를 지구로 전송하겠다는 건데, 이미 2035년이라는 구체적인 날짜까지 박아두고 우주 과학기술 단지 조성을 준비하고 있어요.
결국 지상에서의 핵융합보다 우주에서의 에너지 공급이 더 빠를 수도 있다는 게 지금의 예측입니다. 머스크가 우주에서 300기가와트(GW) 규모의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하는데, 이건 현재 미국이 1년 동안 쓰는 전력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이에요. 이렇게 지구라는 공간적·지리적 제약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시도가 AI와 우주 기술을 통해 아주 급격하게 전개되고 있는 셈입니다.”
우주에 대한 논의는 식량안보와 우주에서의 식량 개발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적인 선진국 대열에 올랐고 K-팝 같은 문화는 초선진국 수준이라고들 하지요. 그런데 정작 국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먹거리와 에너지 조건을 보면, 이 지구상에 우리처럼 극악한 나라가 없습니다.
보통 선진국치고 식량이나 에너지를 자급하지 않는 나라가 없어요. 스위스나 이태리 같은 나라도 지리적 조건만 보면 우리보다 나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릅니다. 스위스는 세계적인 식품 가공 회사와 광물 회사를 보유해서 자기네 필요한 자원을 완벽하게 확보하고 있고, 이태리나 스페인도 석유 한 방울 안 나지만 자기네 석유 회사가 전 세계를 누비며 자원을 가져옵니다. 땅에서 안 나오면 밖에서라도 가져와서 ‘자강(自强)‘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은 어떻습니까? 선진국 중에서 식량 수입률이 제일 높은 나라이면서, 역설적으로 식량을 가장 무섭게 낭비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이건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가 공동체를 책임지는 지도자들의 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이에요. 상공부나 농무부 장관을 지낸 분들이 ‘그냥 돈 벌어서 수입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안일한 생각만 하고 있어요. 전쟁이나 위기가 닥쳤을 때 공동체를 어떻게 지킬지에 대한 전략적 사고가 전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강조하는 게, 이제는 이 땅이라는 지리적 제약을 탈출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왜 유전공학이나 의약품만 우주에서 만드느냐는 겁니다. 우리 쌀을 우주에서 실험하고 재배해서 생산할 수는 없겠느냐는 거죠. 일론 머스크가 AI와 데이터 센터를 우주로 보내려는 것처럼, 우리도 생명 자원과 에너지를 공간적 한계를 넘어 확보하려는 처절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런 거시적인 안목에서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앞날은 결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기자: 장관님께서 우주로 넓혀진 시각을 한국으로 끌고 오셨네요. 우리나라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따끔한 비판과 성찰이 필요할까요?
“대한민국은 지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공동체 의식’이 완전히 빠져버렸어요. 우리 사회가 말하는 공동체라는 게 사실은 아주 원시적인 혈연 공동체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겁니다. 재벌이나 중소기업이나, 심지어 정치나 대학까지도 들여다보면 결국 일가친척이나 조카 같은 혈연으로 얽혀 있어요. 서울대 교수라는 사람이 자기 자식을 논문에 공저자로 올리는 식이니, 공적인 공동체 의식이라는 게 있을 리가 없지요.
더 심각한 건 국가 정체성의 위기입니다. 이 지구상에 독립기념일이나 건국 기념일이 없는 나라가 거의 없는데, 대한민국은 그런 날이 없어요. 1948년 8월 15일을 두고도 한쪽은 건국절이라 하고, 다른 쪽은 정부 수립이라 하며 건국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상해 임시정부조차 1941년 11월 28일 ‘대한민국 건국강령’으 발표해요. 임시정부가 아직 나라를 세우지 않았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중국과 북한도 건국일이 있어요. 건국일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나라 없는 국민과 다름없는 셈입니다. 좌파와 우파가 임시정부 정통성 문제를 두고 싸우느라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공동체 의식을 만들지 못한 것이죠.
재벌들도 이제는 국가 공동체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세요. 골목상권까지 침투하여 손자 손녀와 친척 및 자기네 계열사에게 몰아주며 사소한 이권에만 집착하고 있잖아요. 자기네 계열사 구내식당뿐만 아니라 학교와 군의 구내 식당까지 진출하잖아요. 중소기업이 건강하게 클 기회를 박탈하는 겁니다. 지성인이나 언론도 이런 상황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으니 공동체 의식이 생길 턱이 없지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남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도덕성과 윤리성을 가졌다는 데 있습니다. 이 도덕성이 우월할 때 비로소 사회 공동체가 살아나는 것인데, 지금처럼 도덕성이 해체된다면 대한민국은 현실적으로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시 살아나려면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회고록이 아니라, 잘못을 성찰하고 도덕성을 회복하려는 지독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자: 장관님의 따끔한 말씀이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이제 논의의 주제를 바꿔서 장관님의 삶을 관통하는 경험을 경청하고 싶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겪은 6.25 전쟁은 그야말로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절대 상황’ 그 자체였습니다. 피난길에 용인 근처를 걷다 비행기 기총소사로 바로 앞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제가 다섯 발자국만 앞에 있었어도 죽었을 겁니다. 배고픔과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던 그 시절, 그리고 해방 직후 외교관이나 행정가 한 명 없던 ‘절대 부족’ 의 고통스러운 시대를 우리 세대가 어떻게 견뎌냈는지 다음 세대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 살림이 그토록 어려운데도 국가 장학금을 만들어 원자력 장학생 100여 명을 해외로 보냈습니다. 그 처절한 결단이 오늘날 대한민국 원자력과 과학기술의 기초가 된 것이지요. 우리는 이 과거의 비극을 단순히 고통으로 치부하지 않고, 국사를 일으키는 에너지로 승화시켜 근대화라는 최대의 성공 국사를 써 내려왔습니다.
이런 기초 위에서 박정희 시대에 들어와 1965년에 ‘수출 1억 불’을 달성하게 됩니다. 이게 한국 사회에 ‘우리도 목표를 세워, 하면 된다’는 엄청난 자신감을 불어넣었지요. 당시 로스토우(W.W. Rostow) 같은 세계적인 학자가 한국을 보고 ‘정체에서 벗어나 도약(Take-off) 단계로 갔다’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이승만과 박정희, 이 두 지도자가 청와대에서 사적인 욕심을 버리고 도덕적인 권위를 지키며 국가 공동체의 틀을 세웠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가능했던 겁니다. 양말을 기워 신던 프란체스카 여사나, 물 아낀다고 화장실 변기에 벽돌을 넣어 쓰던 박정희 대통령처럼, 그 시대 지도자들이 가졌던 그 처절한 도덕성과 국가 의식이 대한민국 거버넌스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젊은 세대에게 우리 역사가 얼마나 기적 같은 과정을 거쳐왔는지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 그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마지막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절대 상황과 그 속에서 배운 성찰의 기록을 남겨 주어야 합니다.”
로스토우 박사는 1916년 태어나 2003년 돌아가신 분으로,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경제사가로, 경제 성장의 단계 이론과 냉전기 미국의 대외정책·개발정책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다.
기자: 과기부 장관 당시의 경험을 공유해 주시겠습니까?
“과학기술처 장관 취임 당시, 과학기술을 경제 성장의 단순한 보조 수단으로만 치부하던 관료적 타성과 관료주의를 깨뜨리는 과정은 참으로 고단한 싸움이었습니다.
취임 초기에 국장이나 차관이 가져오는 보고서를 보면 하나같이 ‘경제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시작하더군요. 저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왜 경제 발전의 보조 수단으로만 과학기술을 쓰느냐, 과학기술 자체가 이제는 안보이자 금융이며 국정의 핵심 우선순위다’**라고 강조하며 일일이 보고서를 수정하게 했지요. 이 관념을 바꾸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또한, 간부들이 직접 보고서를 쓰지 않고 사무관에게 미루는 고질적인 행태도 강하게 질타했습니다. 정책 책임자라면 마땅히 본인이 직접 전문성을 갖추고 정책을 주도해야지, 밑에서 써준 글에 이름만 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소신이었습니다.
정부의 역할은 자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정성을 다하는 과학자들을 제대로 지원하고 그들의 명예를 지켜주는 데 있습니다. 우리나라 통신 혁명을 기술적으로 성공시킨 서정욱 박사 같은 분들이 바로 그 예입니다. 미국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기 위해 밤낮으로 정성을 쏟았던 그런 과학자들의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정책 결정자가 끊임없이 정성을 들여 시스템을 개조하고, 스스로를 희생하며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려 할 때만 국가의 진정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기자: 과기부 장관에서 퇴임하시고, 이듬해인 1994년 초 한국 경제신문의 회장으로 취임하셨는데, 우라 힌국사회와 연계하여 나누어 주실 경험 부탁드립니다.
“제가 한국경제신문 회장 시절에 겪은 일인데,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Shibusawa Eiichi)의 손자와 교류했던 경험이 참 잊히질 않습니다. 당시 그분은 일본여자대학 이사장을 맡고 있었는데, 안목이 아주 글로벌하고 성실한 분이었죠. 제가 한일 관계를 넘어 세계적인 차원의 세미나를 함께 해보자고 제안하니 아주 흔쾌히 손을 맞잡고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한 석 달쯤 지나니 연락이 뚝 끊기더군요. 이상하다 싶어 제가 일본에 갈 일이 있을 때 만나자고 했더니, 그분이 저를 아주 비싼 게이샤 하우스로 모셨습니다. 그 자리에 앉자마자 저한테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정말 죄송하다고, 이 프로젝트를 못 하게 됐다고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기가 막혀요. 일본은 이사장의 동정을 매달 문부성에 보고하게 되어 있는데, 문부성에서 한국의 누구를 만나 무얼 한다는 보고를 보더니 하지 말라고 한마디 했다는 겁니다. 법률적으로는 아무런 위반이 아니니 강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분 말씀이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한 우리 대학이 큰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일본 시스템의 무서운 단단함입니다. 법적 규정도 아닌 문부성의 권고, 그 ‘보이지 않는 약속’과 ‘규범’이 법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죠. 반면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민주주의라는 미명 하에 아무나 가서 때려 부수고,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선진국 거버넌스의 핵심은 법의 강제력이 아니라, 구성원 간의 깊은 신뢰와 보이지 않는 약속을 지키는 도덕적 태도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수출을 많이 하고 소득이 높아져도, 이런 신뢰와 신의라는 사회적 자본을 구축하지 못하면 결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지금이라도 물질적 성장을 넘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꼭 필요한 공동체 의식을 갖는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자: 서울시립대 3대 총장으로 1995년 취임하셨는데요. 당시의 학교 분위기와 경험 부탁드립니다.
“제가 시립대학 총장으로 취임했을 때, 단순히 총장 노릇만 하려고 그 자리에 간 것이 아니라고 학생들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리더는 자신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필요를 우선하며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현장을 들여다보니 상황이 참 처참했습니다. 50여 개의 학생 동아리가 있었는데, 동아리방이 물이 차고 곰팡이가 핀 지하실에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그 지하 방에 직접 가본 총장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습니다. 저는 즉시 특별 예산을 투입해 물을 빼고 시설을 전면 수리했으며, 방마다 컴퓨터를 한 대씩 넣어주어 아이들이 희망을 품게 했습니다.
또한 교수 식당과 구내식당에 꽃 한 송이씩을 놓게 했습니다. 비싼 꽃이 아니더라도 꽃 한 송이를 보며 밥을 먹는 것은 구성원들이 서로 존중받으며 대화할 수 있는 인문학적 환경을 조성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적 비전으로는 도시과학(Urban Science) 이라는 독창적인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단순히 도시공학이 아니라, 환경·토목·행정·사회학을 합친 종합적인 도시과학대학을 만들어 아시아를 넘어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키우고자 하는 15년 비전을 설계한 것이죠. 중국과 인도의 거대 도시 건설 프로젝트에 우리 설계와 서비스가 진출할 수 있도록 국가적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 다음 총장이후 이 비전이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대로 이어졌다면 중국,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도시화가 진행되는 국가의 대형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기회가 되었을 겁니다.”

기자: 저희 인터넷 신문사가 미래에 대한 신호와 고민을 나누는 것을 목표로 창립되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의 미래학의 태동에 참여하셨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한국미래학회가 탄생한 1968년 무렵은 우리 역사에서 아주 독특한 시기였습니다. 1965년에 수출 1억 불을 달성하면서 우리 국민들 사이에 ‘우리도 목표를 세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막 생겨나던 때였죠.
그 무렵 이한빈 씨 같은 선구자들이 해외에서 열린 세계미래학회에 참석하며 새로운 안목을 가져왔습니다. 당시 우리가 미래학에 주목한 이유는 단순히 앞날을 예측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절대 부족’의 시대를 겨우 지나 이제 막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는데, 그다음 단계인 선진국으로 가려면 어떤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하는지, 국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죠.
저는 당시 동아일보 기자로서 1년 동안 전 세계 30개국을 돌아다니며 한국인이 해외에서 어떻게 진출해 있는지, 세계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인도의 복잡한 종교 사회부터 스위스의 정교한 시스템까지 두루 살피며 ‘세상은 하나가 아닌데, 우리 한국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처절하게 고민했죠.
결국 한국미래학회는 그런 고민의 결실이었습니다. 단순히 책으로 공부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가 처한 특수한 지리적·역사적 조건 속에서 사회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과 우선순위를 정립하려는 지성인들의 노력이었죠. 단순한 경제 성장을 넘어 국가 공동체의 목적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사고의 장을 마련한 것이 당시 미래학 연구의 진정한 의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장관님께서 우리사회의 어른으로서 2022년 회고록 「김진현 회고: 대한민국 성찰의 기록」을 출간하셨는데, 무엇을 담으려 하셨습니까?
“제가 회고록을 쓴 이유는 명확합니다. 자기자랑이나 오만의 기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죠. 90년 넘게 살아보니, 우리 세대가 겪은 경험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다음 세대에게 실질적인 교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습니다.
지성인이라면, 그리고 한 국가의 지도자였던 사람이라면 과거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성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대통령이나 총리, 대법원장 같은 이들이 ‘그때 내가 이랬어야 했는데’ 하고 사과 한마디 남기는 문화가 우리에겐 너무나 부족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나 전두환·노태우 시절의 비자금 문제 같은 것들이 결국 우리 경제 질서와 공동체 의식을 얼마나 깨뜨렸는지 보십시오.
우리는 이제 단순한 ‘문명의 연장선’이 아닌 전혀 다른 ‘시간’의 문턱, 즉 문명의 전환기에 서 있습니다. AI와 인간, 인공물과 자연이 공생하는 이 독특한 시대를 저는 기존의 언어로는 설명이 안 되어 그냥 ‘시간’ 혹은 ‘새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기존의 문명사 구분인 농업사회, 산업사회 등과 같은 용어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거대한 변화 앞에서 지성인이 가져야 할 태도는 명확합니다.
계산이나 정보 검색 같은 것은 이제 기계의 영역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럴수록 인간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도덕성과 보편적 윤리 가치를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디스토피아를 예방하고,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도록 성실하게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지성인의 참된 자세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장관님은 현재 집필 중인 「AI 특이점 시간 - 대한민국 자강 전략」의 원고 일부를 보여주셨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펜을 놓지 않고 국가의 생존을 고심하는 그 모습에서 노 언론인이자 미래학자로서의 뜨거운 열정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장관님이 평생을 바쳐 쌓아온 혜안이 담길 이 책은 문명 전환기의 파고를 넘어야 할 우리 모두에게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