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국가의 통제를 받던 사이버 공격이 이제 AI와 이념을 매개로 한 다국적 ‘비정규 십자군’의 형태로 진화했다. 이는 기존의 국가 대 국가 중심의 견고한 성벽 수비 체계를 완전히 무력화하는 치명적인 시스템 전환의 신호다.

보이지 않는 교황의 부름, 디지털 십자군의 결성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시작된 원정처럼, 2026년 2월 텔레그램의 ‘전자 작전실(Electronic Operations Room)‘에서 새로운 형태의 성전이 선포되었다. 인도 데이터보안위원회(DSCI)와 보안 기업 라드웨어(Radware)의 분석에 따르면, 중동의 물리적 충돌 직후 60개가 넘는 다국적 해커 군단이 일제히 결집해 단 72시간 만에 16개국 110개 조직에 149건의 파괴적인 분산 서비스 거부(DDoS) 및 데이터 파괴 공격을 퍼부었다.

그동안 사이버 안보는 막대한 예산과 군사 기술을 독점한 영주와 국왕(국가 정규군)의 전유물이라 믿어왔다. 하지만 신념 하나로 뭉치고 생성형 AI로 무장한 ‘익명의 십자군’이 초강대국의 성벽을 더 빠르고 치명적으로 무너뜨리는 역설적 반전이 시작되었다. 과연 이 통제 불능의 기사단은 누구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것일까?

이교도를 향한 공성전: 국경 없는 하이브리드 전쟁

십자군 원정에 참전했던 각양각색의 기사단과 농민병들처럼, 전자 작전실 내부에는 국적도 기존의 활동 목적도 전혀 다른 조직들이 섞여 있다. 오렌지 사이버디펜스(Orange Cyberdefense)의 3월 보고서는 이란 연계 부대인 ‘한다라 핵(Handala Hack)‘과 러시아 기반의 용병 조직 ‘카디널(Cardinal)‘이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이라는 교리 아래 맹세를 맺은 정황을 포착했다.

이들은 개별적인 약탈을 멈추고, 아마존웹서비스(AWS)의 글로벌 데이터센터나 대형 의료기기 인프라라는 이교도의 거점을 향해 공동의 공성전을 펼치고 있다. 각자의 영지에서 점조직으로 움직이던 이들이 이제는 실시간으로 타깃을 공유하고 공격 기법을 교환하는 거대한 연합 진형을 짠 것이다.

농민의 손에 들린 쇠뇌: AI가 무너뜨린 성벽

이 오합지졸 연합군이 단기간에 정규군을 위협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십자군 시대의 ‘쇠뇌(Crossbow)‘와 같은 무기, 바로 생성형 AI가 자리 잡고 있다. 과거 국가 주요 기반 시설(ICS/OT)의 두꺼운 성벽을 뚫으려면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기사(APT 그룹) 수준의 훈련과 기술력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유럽 네트워크 정보보호원(ENISA)의 최신 위협 전망이 지적하듯, 이제는 범용 AI 도구 덕분에 평범한 농민(초보 핵티비스트)조차 적의 약점을 자동으로 탐지하고 파괴적인 악성 코드를 쏘아 올릴 수 있다. 기술적 진입 장벽이 무너지면서, 신념만 있다면 누구나 참전할 수 있는 ‘오픈소스 성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물리적 영지의 불길: 통제 불능의 스필오버

십자군의 열광이 종종 통제 불능의 약탈과 파괴로 이어졌듯, 가장 주시해야 할 대목은 이들의 공격이 더 이상 디지털 세계의 데이터 탈취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클라우드시크(CloudSEK)는 신념의 군대들이 전력망, 항만 물류, 병원 생명 유지 장치 등 현실 세계의 영지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사이버 공간의 종교 전쟁이 민간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물리적 스필오버(Spillover)로 번지기 시작할 때, 각국 정부가 인내로 쌓아올린 성벽은 붕괴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이해관계자 시사점

️ 정책 및 사회적 시사점

통제 밖 기사단에 대한 교전 수칙 재검토: 기존 국제법과 전쟁 규칙은 적대 국가의 정규군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이념으로 뭉친 다국적 민간 해커 연합이 국가 인프라를 마비시켰을 때, 이를 개별적인 테러 행위로 간주할 것인지 아니면 배후 영주(국가)에 대한 무력 공격으로 간주하여 물리적 보복에 나설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국제적 교전 수칙(Rules of Engagement) 합의가 시급하다.

민간 성채의 국가 안보 자산화: 해커 연합의 주된 타깃은 방어망이 견고한 왕궁(정부 기관)이 아니라, 방어가 상대적으로 성긴 민간 상업 도시(클라우드와 의료 시설)다. 정책 입안자들은 핵심 IT 민간 기업의 보안 인프라를 국가 안보 자산으로 편입시키고, 침해 사고 발생 시 국가의 근위대(군·정보기관)가 즉시 개입할 수 있는 법적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

연합군을 막기 위한 방어 동맹 구축: 텔레그램을 통해 72시간 만에 공격을 조율하는 성전에 맞서려면 개별 영지의 성벽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동맹국 간의 사이버 위협 정보(CTI)를 AI 기반으로 실시간 공유하고 능동적 방어망을 연동하는 초국가적 수비 동맹(Active Defense Network) 구축이 필수적이다.

물리적 국경은 첨단 미사일 방어 체계라는 튼튼한 성벽으로 지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신념의 깃발 아래 연대하고 AI라는 쇠뇌로 무장한 디지털 십자군 앞에서는 우리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부터 거대한 발전소까지 모든 연결점이 곧 최전선의 성문이다. 21세기의 사이버 성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는 익명의 네트워크 속에 숨어 보이지 않는 교황의 부름을 따르는 이 유령 군대들을 상대로, 전혀 새로운 방어의 역사를 밑바닥부터 다시 써 내려가야만 한다.


[주목해야 할 것들]

미래 신호: 다국적 십자군이 탈취한 민감 데이터를 금전적 이익이 아닌, 적대 국가의 치부를 폭로하고 정치적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신앙적 인질극 카드로 활용하는 사례 급증.

시스템 영향: 개별 영주(기업) 차원의 성벽 수비 모델이 무너지고, 국가 주도의 거대한 ‘섹터별 통합 방어 성채(클라우드)‘로 산업 인프라가 강제 이주하는 현상.

모니터링 포인트: 해킹 도구와 타깃 목록이 거래되는 암시장(다크웹)에서,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용병단 간의 암호화폐 군자금 거래 및 동맹 체결 동향.

[전략가의 질문]

️ 익명의 해커 십자군이 타국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는 심증은 있으나 디지털 흔적이 불충분할 경우, 국가는 어떤 방식으로 배후에 억지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 민간 상단(클라우드 사업자)의 인프라가 다국적 사이버 성전의 주요 통로로 악용될 때, 정부는 이들에게 어디까지 방어의 책임을 강제할 수 있는가?

️ 비정규 핵티비스트들의 끊임없는 게릴라성 공성전에 맞서, 우리 사회는 필수 디지털 서비스의 간헐적 함락이라는 ‘새로운 일상’을 버텨낼 회복 탄력성을 갖추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