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경제를 키우는데 청년의 소득은 오히려 줄어드는 ‘유령 성장(ghost GDP)‘이 선진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가시화하고 있다. 반도체 호황이 이 역설을 더 키우기 전에, 성장 과실을 청년 재교육과 복지 제도 재설계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반도체는 호황인데 청년은 왜 일자리를 잃는가
한국 반도체 수출 곡선이 가파르게 솟아오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가 전 세계 AI 데이터센터 확충과 맞물려 급증했다. 반면 청년 노동시장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2026년 4월 서울경제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한국 20대 구직 포기자는 7만 3,407명을 기록했다. 전체 구직 단념자 35만 4,000명 중 20.7%를 차지하며,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이런 고용 한파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골드만삭스가 2026년 6월 발표한 ‘AI 도입 추적(AI Adoption Tracker)’ 보고서는 미국 노동시장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AI 도입으로 매월 약 2만 5,000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9,000개가 새로 생겨난다. 매달 1만 1,000개에서 1만 6,000개 일자리가 순감하는 셈이다. 반도체 호황이 국가 경제를 견인하는 동안 청년은 일자리를 잃는다. 기묘한 역설이다.
사라지는 커리어 사다리의 첫 칸
왜 AI는 청년 직군을 가장 먼저 타격하는가. 202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한국 AI 노동시장 보고서에 답이 있다. 청년 세대는 조직에 입사해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며 실무 경험을 쌓는다. 이 과정을 거쳐야 복잡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숙련 노동자로 성장한다. 그러나 AI가 이 ‘온램프(on-ramp·진입로)’ 직종을 먼저 대체하면서 노동시장 진입 장벽이 급격히 높아졌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 4월 보고서에서 AI 대체가 집중되는 직군을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데이터 입력, 고객 서비스, 법률 지원, 청구 정산, 콘텐츠 모더레이션, 기초 재무, 신입 소프트웨어 개발 직무가 직격탄을 맞았다. 과거 신입 사원이 담당하던 기초적인 지식 노동을 이제 생성형 AI가 처리한다. 청년이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던 커리어 사다리의 첫 번째 칸이 통째로 사라진 셈이다.

숫자로 확인되는 일자리 충격의 크기
충격의 규모는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난다. 테크타임스가 2026년 6월 분석한 자료를 보면, 최근 12개월 동안 엔트리레벨 테크 일자리 14만 8,092건이 증발했다. 스탠퍼드대학교 인간중심 인공지능연구소(HAI)가 2026년 4월 발표한 AI 인덱스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준다. 22세에서 25세 사이 신입 소프트웨어 개발자 고용은 2024년 이후 약 20%나 줄었다.
한국 청년이 체감하는 위기도 심각하다. 서울경제 2026년 4월 보도에 따르면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쉬는 30대 인구가 역대 최고치인 30만 9,000명을 기록했다. 15세에서 29세 사이 쉬는 인구도 42만 8,000명에 달한다. 반면 포춘은 2026년 4월 기사에서 머신러닝 엔지니어 채용 공고가 2020년 2월 대비 59% 늘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 대졸 신입이나 비전공 청년이 이 자리를 즉시 채우지 못한다. 존재하는 일자리와 청년 현실 사이의 간극이 벌어진다.
반도체 호황이 키우는 ‘유령 성장’
이 단절은 ‘유령 성장(ghost GDP)‘이라는 새로운 경제 현상을 낳는다. 유령 성장이란 AI와 반도체 산업이 국가 경제 성장을 이끌지만, 그 성과가 청년 소득 증가로 연결되지 않는 현상을 뜻한다. 한국 반도체 수출 호황이 국내총생산(GDP) 숫자를 끌어올린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 특성상 고용 흡수력이 낮아 낙수 효과가 제한적이다.
AI 기술 발전이 신입 사무직 일자리를 줄이는 동안, 반도체 수출이 창출한 막대한 이익은 기업 법인세와 주주 배당으로 집중된다. 미국 인적자원관리협회(SHRM)가 2026년 발표한 연구는 노동 현장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인사(HR) 직군 종사자 11.9%가 이미 본인 업무 절반 이상을 생성형 AI로 수행한다. 전체 피고용자 평균인 7.8%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가운데 거시 경제 지표만 상승하며 유령 성장을 심화한다.
성장의 과실을 어디에 쓸 것인가
앞으로 반도체 호황으로 얻은 초과 이익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의 미래 경로가 달라진다. 정부와 기업이 AI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법인세 증가분을 청년 재교육 인프라와 복지 제도 재설계에 적극 투자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유령 성장은 청년의 실질 소득으로 전환될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6년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억 7,000만 개 일자리가 새로 생기고 9,200만 개가 사라진다고 내다봤다. 순증하는 7,800만 개 일자리는 AI, 데이터, 에너지 전환 분야에 집중된다. 재원 투입이 실효성 있는 AI 시대 실질 역량 교육과 결합할 때 청년은 이 새로운 일자리를 차지한다. 반면 재원을 방치한다면 2030대 비경제활동인구 증가 추세가 굳어지고, 세대 간 자산 격차가 벌어지며 장기 소비 침체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복지 재설계와 온램프 복원 정책
한국 정부도 일자리 충격에 대응해 움직인다. 서울경제 2026년 4월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청년 참여소득 도입을 추진 중이다. 유의미한 단기 소득 지원책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재교육 및 역량 전환 프로그램과 연계해야 실효성을 거둔다.
정책 담당자는 세 가지 옵션을 비교 검토해야 한다. 옵션 A는 참여소득과 재교육 바우처를 결합해 청년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한다. 옵션 B는 반도체와 AI 산업 초과이익세나 자동화 보조금을 활용해 안정적인 교육 복지 기금을 조성한다. 옵션 C는 OECD 권고를 수용해 기존 온램프 직종을 일정 부분 보호하면서 점진적 직무 전환을 돕는다. 아울러 20대 비경제활동인구 증가율과 신입 레벨 채용 비율을 조기 경보 지표로 삼아 정책 개입 시점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AI 시대 생존을 위한 역량 전환
지금 20대 청년은 과거와 전혀 다른 역량에 투자해야 한다. 단순히 AI 도구를 다루는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AI가 내놓은 산출물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여러 정보를 통합하는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다. 기계가 대체하기 어려운 복잡한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협상력도 필수다.
머신러닝 엔지니어 공고가 59% 늘어난 사실은 분명한 기회다. 하지만 중간 단계 재교육 경로가 없다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청년 세대는 단기적으로 정부가 제공하는 참여소득이나 재교육 바우처 같은 정책 자원을 적극 활용해 역량을 키워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유령 성장 논쟁이 정치 의제로 떠오를 때 청년 스스로 정책을 요구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비용에서 투자로, 열린 창을 향해
지금 노동시장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는 세 가지다. 반도체 호황과 청년 일자리 감소는 모순이 아니라 같은 현상이 빚어낸 두 얼굴이다. AI와 반도체가 국가 성장을 끌어올리는 동안 그 성장의 열매는 청년 손에 닿지 않는다.
유령 성장은 정책이 개입하지 않으면 견고한 구조로 굳어버린다. 반도체 초과 이익을 재교육과 복지에 재투자하지 않으면 성장 수치와 청년 현실 사이의 간극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다. 청년 재교육과 복지 제도 재설계를 단순한 비용 지출로 여겨서는 안 된다. AI 시대 노동시장에 끊어진 온램프를 다시 놓는 국가적 투자다.
이 사안은 특정 세대가 겪는 불운이 아니다. 기술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을 사회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를 묻는 구조적 문제다. 다행히 한국 반도체 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지금, 성장 과실을 청년에게 돌려줄 정책의 창(policy window)이 열려 있다. 그 창이 닫히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