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은 건강 관리의 도구가 됐다. 그런데 그 도구를 쓰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반대로 작동한다. 의료 서비스가 플랫폼 뒤로 사라지는 속도만큼, 노인의 건강 격차는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2025년, 한국은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선 것이다. 그런데 같은 해 70세 이상 노인의 디지털 리터러시 지수는 일반 국민의 35.7%에 불과하다. KDI가 정리한 2025 고령자 통계가 확인한 수치다.
이 숫자가 단순한 불편이 아닌 이유가 있다. 24개국 12만 2,242명을 추적한 국제 코호트 연구는 디지털 배제가 노인의 우울증과 독립적·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대규모 통계로 뒷받침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은행은 이를 건강 분단(health divide)이라 부른다.
긴장은 여기에 있다. 건강을 지키려고 개발한 디지털 도구가, 정작 그 도구에 접근하지 못하는 노인에게는 건강을 갉아먹는 배제 기제로 역전된다.
코로나가 강요한 디지털 전환, 이중 배제 구조를 만들다
이 현상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WHO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추진한 디지털 헬스 글로벌 전략은 형평성을 핵심 목표로 내걸었다. 하지만 현실의 속도는 형평성보다 빨랐다.
코로나19가 결정적이었다. 비대면이 강제된 2020~2022년, 병원 예약과 약 처방, 복지 신청이 일제히 앱과 플랫폼으로 옮겨 갔다.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는 노인은 집에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노인은 한순간에 의료와 복지 시스템 밖으로 밀려났다.
공중보건 연구자들은 이것을 이중 배제(double exclusion)라 부른다. 디지털을 모르면 서비스를 받을 수 없고, 막상 서비스를 받으러 가면 이미 디지털로 안내된다. 공식 언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행정 창구 앞에 서는 것과 같은 구조다.

농촌 3.5%·도시 12.5% — 디지털 고립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진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에 따르면 45세 이상 성인의 3분의 1이 고독감을 호소하고, 65세 이상 성인의 4분의 1은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다. 한국의 농촌 노인 인터넷 이용률은 3.5%다. 도시 노인(12.5%)과 비교해도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도농 격차가 디지털 격차를 증폭시키는 셈이다.
JMIR Aging이 2025년 발표한 8년 종단 연구는 디지털 고립이 우울 위험을 시간에 비례해 높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독거 노인에서 그 효과가 컸다. 사회적 네트워크 자체가 얇을수록 디지털 단절이 가져오는 고독의 충격은 더 크다는 의미다.
OECD는 2025년 보건 통계(Health at a Glance 2025)에서 고소득 국가에서조차 디지털 건강 불평등이 고령 계층에 집중된다고 경고했다. 2026년 JMIR Aging에 발표된 한국 연구는 그 메커니즘을 구체화했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낮은 노인은 기술에 대한 불안과 자기효능감 저하를 거쳐 우울과 고독에 이른다. 기술 숙련이 단순한 편의 도구가 아니라 심리·사회적 자본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본은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기기를 나눠줘도 쓰지 않는 노인이 많다는 연구 결과가 누적되고 있다.
ATM이 은행 창구를 삼켰을 때 — 역사가 지금에게 보내는 경고
이 현상의 밑바닥에는 두 가지 세계관의 충돌이 있다.
하나는 디지털은 모두를 연결한다는 믿음이다. 보건 당국과 민간 기업은 이 믿음 위에서 서비스를 디지털로 옮겼다. 다른 하나는 연결 능력 자체가 불평등하다는 현실이다. 연결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디지털 전환은 포용이 아니라 배제다.
구조적으로 보면 의료와 금융, 복지 시스템이 디지털 리터러시를 일종의 입장권으로 요구하는 방식으로 재편됐다. 오프라인 창구를 줄이고 앱을 늘리면 효율은 높아지지만 접근 채널은 하나로 좁아진다. 그 채널이 막히면 배제는 전면적이다.
역사적 선례가 있다. 1990년대 ATM이 은행 창구를 대체했을 때, 저소득·고령 고객이 금융 서비스에서 배제되는 문제가 한국과 영국, 미국에서 동시에 논란이 됐다. 이후 각국은 고령자 금융 접근권을 법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지금 디지털 전환의 속도는 ATM보다 훨씬 빠르고, 한꺼번에 삼키는 서비스의 수는 훨씬 많다.

기기 지급만으론 부족하다 — 통합 지원이 효과를 냈다
방향이 바뀔 수 있는 조건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2026년 JMIR Aging에 실린 한국 농촌 노인 준실험 연구는 지역사회 기반의 디지털-커뮤니티 통합 지원 프로그램이 우울과 고독감 개선에 유의한 효과를 냈음을 확인했다. 기기 공급이 아니라 역량 교육과 정신건강 지원을 묶은 접근이었다.
일본은 디지털 코치 제도를 지역사회로 확산하고 있다. 핀란드와 영국은 노인 디지털 지원을 지역 복지 시스템과 통합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경고도 있다. 같은 한국 연구에서 농촌과 저소득 노인은 통합 프로그램 안에서도 접근 장벽이 사라지지 않았다. 기기와 교육을 제공해도 왜 써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없으면 사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디지털 포용은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라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디지털 소외를 건강 불평등으로 — 세 가지 정책 전환
세 가지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기기 공급에서 역량·동기 통합 지원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노인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정신건강 지원과 연계된 통합 모델은 아직 예외적이다. 여러 연구가 반복해서 확인하는 것은 기기를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디지털 소외를 건강 불평등으로 공식 재정의해야 한다. 지금은 디지털 격차가 정보통신 정책 영역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우울증·고독이라는 임상 결과와 연결된 이상, 공중보건 의제로 격상할 근거는 충분하다. 건강보험과 장기요양 체계에서 오프라인 접근 채널을 의무적으로 병행하자는 입법 논의도 이 맥락에서 출발할 수 있다.
마지막은 예방 비용의 관점이다. 우울증과 사회적 고립이 만성화되면 입원·약물치료·요양 비용이 급증한다. 초고령사회에서 노인 디지털 격차를 방치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공공 의료 재정에 청구서를 떠넘기는 일이다. 일본과 핀란드, 영국이 통합 지원 모델을 확산하는 동안 한국이 보급 중심 접근에 머문다면, 초고령사회 건강 지표에서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
통역사가 아니라 언어 장벽 자체를 낮추는 구조 개혁
24개국 12만 명의 데이터가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디지털에 접근하지 못하는 노인은 더 외롭고, 더 우울하고, 더 빨리 아프다. 기술이 건강의 보호막이 된 시대에, 그 보호막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
이것은 기술 정책이 아니라 공중보건 정책의 문제다. 디지털 배제는 고독을 낳고, 고독은 질병을 낳는다. 그 연쇄는 이미 숫자로 증명됐다.
ATM이 은행 창구를 대체했을 때 사회는 접근권을 법으로 보장했다. 지금 디지털 전환의 속도는 그때보다 훨씬 빠르다. 공식 언어를 모르는 외국인에게 사회가 통역을 지원하듯, 디지털 언어를 모르는 노인에게 사회는 새로운 접근권 설계를 내놓아야 한다. 통역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 언어 장벽 자체를 낮추는 구조 개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