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 플랫폼이 법적 공방의 타깃이 된 건 처음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무한 스크롤·알고리즘 추천 등 ‘설계 자체’를 결함으로 인정받은 세계 첫 판결이다. 담배 산업이 1990년대 소송 물결 뒤 경고 라벨·마케팅 규제로 재편됐듯, 이 판결은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참여 극대화 기반 광고—에 법적 균열을 낸 첫 사례다. 배상액(600만 달러)보다 판례(결함 설계 인정)가 훨씬 크다.

메타 주가는 1% 올랐지만, 법정의 프레임은 달라졌다

2026년 3월 25일, LA 법정. 배심원단이 8일을 심의한 끝에 판결문을 읽었을 때 메타와 구글의 주가는 각각 1%, 0.2% 상승했다. 시장은 600만 달러라는 배상액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숫자가 핵심이 아니다. 배심원들이 판단한 건 금액이 아니라 ‘왜’였다. 무한 스크롤과 알고리즘 추천이 결함 있는 제품의 구조였다는 것. 이 순간부터 소셜미디어 소송전의 무게중심이 바뀌었다. 담배처럼 기소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현실이 됐다.

6세 유튜브, 9세 인스타그램 — 배심원이 본 것은 ‘의도된 설계’였다

원고는 케일리 G.M., 올해 스무 살이다. 여섯 살에 유튜브를 켰고, 아홉 살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그가 법정에서 주장한 건 특정 콘텐츠의 유해성이 아니었다. 무한 스크롤과 알고리즘 추천 기능—그 설계 자체가 미성년자의 심리적 취약성을 의도적으로 악용했다는 것이었다. 배심원단은 이를 받아들였다. 메타가 70%, 구글이 30%를 부담하는 총 600만 달러의 판결을 내렸다.

같은 달 뉴멕시코주에서는 별도 소송에서 메타에 3억 7,500만 달러 벌금이 명령됐다. 단일 판결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현재 연방 다중지구소송(MDL)에는 원고 235명 이상, 학교·학군 250개 이상, 메타 대상 개인 중재 10만 건 이상이 몰려 있다.

담배와의 구조적 유사성은 2021년에 이미 확인됐다. 전 페이스북 직원 프랜시스 호건이 유출한 내부 문서는 메타가 인스타그램의 10대 소녀 정신건강 해악을 알고도 공표하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담배 회사들이 1950년대부터 니코틴 중독성을 알고도 숨겼듯이. 이 문서들이 이번 소송에서 ‘의도성’ 입증의 핵심 증거로 쓰였다.

표현의 자유 방어막을 우회한 ‘설계 결함’ 논리의 도착

소셜미디어 관련 소송은 오랫동안 두 장벽에 막혔다. 하나는 섹션 230—플랫폼을 콘텐츠 게시자가 아닌 유통 채널로 보호하는 조항이다. 다른 하나는 수정헌법 제1조—플랫폼의 알고리즘 큐레이션을 ‘표현의 자유’로 보호하는 논리였다.

이번 소송은 두 방어막을 정면으로 피해갔다. 무한 스크롤, 알림 설계, 추천 알고리즘은 ‘콘텐츠’가 아니라 ‘공학적 구조물’이다. 콘텐츠를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제공하느냐의 문제다. 하버드 법대 저널은 이를 ‘설계에 의한 중독(Addiction by Design)‘이라 정리했다. 법원들은 이 논리에 따라 설계 기반 청구는 섹션 230의 면책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시작했다.수치가 뒷받침한다. WHO 유럽 지역 사무소가 44개국 28만 명을 조사한 결과, 청소년의 문제적 소셜미디어 이용률은 2018년 7%에서 2022년 11%로 증가했다. 미국 심리학회에 따르면 하루 3시간 이상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청소년은 정신건강 문제 위험이 2배에 달하는데, 미국 10대의 평균 사용 시간은 3.5시간이다.12개국 입법 도미노 — 한국만 공청회 문턱을 못 넘었다

글로벌 입법 물결은 판결보다 빨랐다. 호주는 2024년 12월 16세 미만 소셜미디어 금지를 시행했다. 인도네시아는 2026년 3월 같은 조치를 실행했다. 프랑스는 하원에서 130대 21로 15세 미만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는 2026년 6월 금지 선언을 내놨다. 독일, 노르웨이, 폴란드, 말레이시아가 뒤를 따르고 EU는 디지털공정법을 준비 중이다.

캘리포니아는 한 발 더 나갔다. 2025년 10월 통과된 AB 56는 2027년 1월부터 18세 미만 이용자에게 소셜미디어 접속 시 경고 라벨 표시를 의무화한다. 담배 경고문의 디지털 버전이다.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안은 6건이지만 공청회조차 열리지 않았다. 정부 조사에서 청소년의 47%가 “SNS 사용 조절이 어렵다"고 답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담배 소송이 어디로 갔는지 보면, 1998년 미국 4대 담배사는 2,460억 달러 규모의 마스터 합의에 서명했다. 미성년자 대상 마케팅을 금지하고, 경고 라벨을 의무화했다. 소셜미디어 산업이 그 길을 걷는다면, 알고리즘 설계 공개와 무한 스크롤 제한이 다음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이다. 단, 메타와 구글은 즉각 항소를 선언했다. DSM-5(정신질환 진단 통계 매뉴얼)에 아직 ‘소셜미디어 중독’이 공식 질환으로 등재되지 않은 사실도 소송 흐름의 변수로 남는다.

️ 입법 공백이 법적 리스크를 키운다 — 한국이 미룰 수 있는 시간이 줄었다

한국 국회가 공청회를 열지 않는 사이 12개국은 이미 입법을 완료하거나 진행 중이다. ‘중독 설계’에 법적 책임이 인정되면, 국내 플랫폼 기업도 알고리즘 설계 기록을 소송 증거로 제출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개인정보 보호법 체계가 이 새로운 책임 논리를 수용할 수 있는지 선제 검토가 필요하다.

조기 경보 지표는 두 가지다. 캘리포니아 AB 56 시행(2027년 1월)과 EU 디지털공정법의 구체적 내용이다. 어떤 설계 기준—무한 스크롤 제한, 야간 알림 금지, 알고리즘 감사—이 법제화되느냐가 향후 글로벌 표준의 윤곽을 그린다. 이 기준이 정착되기 전이 입법 창이 가장 넓은 시점이다.

‍ 보호받는 대상이자 규제의 대상 — 알고리즘 읽는 눈이 새 생존 기술이 된다

연령 제한 입법이 일률 적용되면 정보 접근권과 표현의 자유도 함께 제한된다. 보호받는 대상인 동시에 규제의 대상이 되는 역설이다. 이 맥락에서 ‘알고리즘 리터러시’—내가 어떻게 더 오래 머물도록 설계됐는지 이해하는 능력—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새로운 생존 기술이 된다.무한 스크롤을 당기는 손이 아니라, 그 설계를 읽는 눈을 갖추는 것. 규제가 접근 차단에만 치우칠 경우 예상치 못한 대체 경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리터러시 교육은 연령 제한 논쟁과 함께 진행돼야 한다.무한 스크롤은 계속 돌아가지만, 법정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담배 회사들은 반세기 동안 자사 연구를 감췄다. 법정에서 그 사실이 밝혀지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소셜미디어는 다르다. 호건의 내부 문서는 5년 전에 이미 공개됐다. 법원이 그 의미를 평결로 확인하는 데 5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 신호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플랫폼이 ‘광장’이 아니라 ‘제품’으로 재분류되기 시작했다는 것. 광장엔 책임자가 없지만, 제품엔 설계자가 있고 그 설계자는 결함에 책임을 진다.

무한 스크롤은 오늘도 돌아간다. 하지만 법정의 시계도 멈추지 않는다. 다음 판결은 어떤 숫자를 내놓을까—그리고 그 숫자가 담배 마스터 합의의 자릿수에 가까워질 때, 알고리즘 설계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까.

생각해볼 질문

만약 한국 법원에서도 비슷한 소송이 제기된다면, 당신이 10대 자녀를 둔 부모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플랫폼을 상대로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아니면 개인의 사용 습관이 우선이라고 보는가.

케일리처럼 어린 나이에 소셜미디어를 처음 접한 당신 혹은 주변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때 무한 스크롤이 없었다면 사용 패턴이 달라졌을까. 알고리즘은 선택이었나, 아니면 설계된 당김이었나.

‘알고리즘 리터러시’—내가 왜 이 콘텐츠를 계속 보게 되는지 이해하는 능력—를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느 학년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는 게 적절할까.

주목해야 할 것들

미래 신호 — 이번 판결은 ‘제1호’다. 연방 MDL에 집적된 235명 이상의 원고 소송과 10만 건의 개인 중재가 어떤 속도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담배 마스터 합의에 준하는 대규모 합의 협상 가능성이 열린다. 합의 테이블의 조건—경고 라벨, 무한 스크롤 제한, 알고리즘 설계 공개—이 산업 재편의 실제 내용이 될 수 있다.

⚖️ 분기점 — 항소심과 DSM-5의 방향이 갈림길이다. 상급 법원이 ‘설계 결함’ 논리를 인정하면 물꼬가 열린다. 반대로 DSM-5에 ‘소셜미디어 중독’이 공식 질환으로 등재되지 않는다면 피해 입증 기준이 높아져 소송 흐름이 둔화될 수 있다.

전략 창 — 프랑스·영국·EU가 연내 어떤 설계 기준을 법제화하느냐가 향후 글로벌 표준이 된다. 무한 스크롤 제한, 야간 알림 금지, 추천 알고리즘 감사 의무—이 중 어디까지 포함되느냐를 추적해야 한다. 한국의 입법 창은 이 흐름이 정착되기 전이 가장 넓다.

연결 이슈 — 소셜미디어 접근 차단이 이뤄질 때 AI 챗봇이 또래 대체재로 기능하는 현상은, 규제가 설계 교정보다 접근 금지에 치우칠 경우 예상치 못한 대체 중독 경로를 만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