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파리협정을 두 번 탈퇴하는 동안 중국은 전 세계 태양광 시장의 80%를 장악했다. 기후 리더십은 선언이 아니라 공장에서 결정됐다. 누가 협정에 서명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에너지 전환의 공급망을 쥐고 있느냐로 21세기 경제 패권이 나뉜다.

행정명령 한 장으로 두 번 탈퇴한 나라 — 역설이 시작됐다

2026년 1월 27일, 두 장면이 겹쳤다. 워싱턴에서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가 발효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취임 첫날 서명한 행정명령이 1년 유예 기간을 마치고 현실이 된 것이다. 같은 날, 시진핑 국가주석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중국은 기후 행동을 늦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를 ‘사기’라 불렀던 나라가 물러선 자리에, 세계 최대 탄소 배출국이 들어섰다. 이 역설이 2026년 기후 질서의 새 방정식이다.

설계자에서 방해자로 — 미국이 바꾼 것

파리협정은 미국 없이 탄생하지 못했다. 2014년 오바마-시진핑 공동 기후 선언이 협정의 씨앗이었고, 2015년 미국은 공동 설계자로 서명했다.

그 나라가 두 번째 탈퇴를 마쳤다. 1기 트럼프 때 한 번, 바이든이 복귀시켰고, 2기 취임 첫날 또 나갔다. 파리협정 탈퇴는 이제 아무 비용도 치르지 않고 반복할 수 있는 정치 행동이다. 다자 기후 외교가 행정명령 수준에서 취소 가능한 구조임이 두 번 확인됐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은 탈퇴 발효 직후 말했다. “트럼프가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기후 리더십을 포기하면서, 청정에너지 경제를 중국에 헌납하고 있다.” 2025년부터 미국 연방 정부는 재생에너지 기업에 역인센티브를 주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청정에너지 투자국이었던 나라가 방해자로 돌아섰다. 그 빈자리는 누가 채웠는가.

공장이 먼저 움직였다 — 태양광 80%, 풍력 70%, 전기차 60%

기후 리더십은 공장에서 나온다. 중국은 전 세계 태양광 패널의 80%, 풍력 터빈의 70%, 전기차의 60%를 공급한다. 점유율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이 주도한 규모의 경제가 태양광 비용을 10년 만에 90% 낮췄다. 선진국도, 개발도상국도 중국 없이는 에너지 전환을 실행하기 어렵다.

2026년 2월, 중국의 청정전력 비중이 52%를 돌파하며 화석연료 발전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2024년 클린에너지 투자액은 6,250억 달러로 전 세계의 31%다. IEA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재생에너지 설비 증설의 60%가 중국에서 나올 것으로 본다.

19세기 영국이 세계의 공장이었다가 그 자리를 미국에 내준 것처럼, 21세기 청정에너지 공급망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이번엔 전임자가 스스로 자리를 비웠다. 그런데 공급망의 패권자가 곧 기후의 리더인가 — 이 질문의 답은 아직 열려 있다.

NDC 야망과 석탄 딜레마 — 중국 리더십이 통과해야 할 시험

결정적 빈칸이 있다. 중국은 2025년 11월 UNFCCC에 2035 NDC를 제출하며 탄소 정점 대비 7~10%의 절대 감축 목표를 담았다. 탄소 집약도(GDP당 배출량) 기준에서 절대량 목표로 바꾼 것은 의미 있다. 그러나 Climate Action Tracker는 “현행 정책 수준에서도 이미 달성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이 목표를 넘어서는 야망이 진짜 시험이다.

또 다른 역설도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짓는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큰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파이프라인을 유지한다. 기후 리더십의 주인공인지, 에너지 공급망의 패권자인지 — 두 역할이 아직 분리되지 않은 채 공존 중이다.

중국은 2022년 이후 54개국에 청정에너지 공장을 건설했다. 글로벌 남방(아프리카·동남아·남미)의 에너지 인프라가 중국산 기술로 채워지면, 기후 거버넌스의 표준도 함께 이동한다. 향후 10년 기후 외교의 핵심 변수가 여기서 결정될 수 있다.

️ 다자 기후 협약의 설계를 다시 짜야 한다 — 한국의 자리

파리협정은 행정명령 한 장으로 반복 탈퇴 가능한 구조임이 두 번 입증됐다. 탈퇴 비용을 높이는 법적 장치가 없으면, 다음에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미국이 만든 틀을 중국이 운영하는 구도가 현실화될 때, 민주주의 국가들이 기후 거버넌스 규칙 제정에서 발언권을 지키는 것이 과제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독자 기후 외교 포지션을 세워야 한다. 재생에너지 공급망의 중국 의존도와 에너지 안보를 같이 고려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IEA 가입국으로서 청정에너지 기술 표준 논의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 경로다.

중국산 공급망 없이는 에너지 전환이 없다 — 한국 산업의 딜레마

재생에너지 공급망에서 중국의 지위는 단기간에 대체하기 어렵다. 국내 태양광·풍력·배터리 산업은 중국 공급망과의 협력과 독립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가 촉발한 공급망 재편에서 비중국 제조 프리미엄을 잡는 포지셔닝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단, 수년에 걸친 투자가 전제돼야 한다. 중국 기업들이 54개국에 청정에너지 공장을 짓고 글로벌 남방과 직접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속도도 눈여겨봐야 한다.

기후 패권의 이동은 시작됐다, 완성은 아직이다

역사는 패권 이행의 패턴을 반복한다. 19세기 말 영국이 쌓은 제조 헤게모니를 미국이 받아 올린 것처럼, 21세기 청정에너지 공급망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이번엔 전임자가 스스로 자리를 비웠다.

중국은 공장으로 증명했다. 협상 테이블의 선언이 아니라, 태양광 비용을 낮추고 전력망을 채우는 방식으로 전환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공급망의 패권자가 곧 기후의 리더는 아니다. NDC 절대 감축 목표의 이행과 석탄 파이프라인의 처리가 그 경계를 가른다.

2026년 1월, 미국이 협정을 떠난 날 중국은 “늦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진짜 공약인지 지정학적 계산인지는 아직 판명되지 않았다. 기후 패권의 대이동은 시작됐지만, 완성은 아직이다.

생각해볼 질문

한국의 재생에너지 공급망은 이미 중국산 태양광과 배터리에 깊이 연결돼 있다. ‘탈중국화’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두 목표가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이 필요할까? 앞으로 10년간 한국 에너지 정책의 핵심 딜레마가 여기서 시작된다.

파리협정이 행정명령 한 장으로 반복 탈퇴 가능한 구조라는 사실이 두 번 확인됐다. 국제 기후 협약이 더 강한 구속력을 가지려면 어떤 설계가 필요할까? 선진국의 기후 약속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주목해야 할 것들

중국의 2035 NDC 절대 감축 목표(정점 대비 710%)가 이행되면, 세계 1위 탄소 배출국의 첫 절대 감축 공약이 된다. 이 목표 이행 여부가 20282030년 기후 거버넌스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지표다. 중국의 연간 배출량 추계 데이터가 관찰 대상이다.

⚖️ 중국은 재생에너지 설치와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이 모순이 ‘기후 리더’ 정당성을 훼손하는 임계점이 언제 오는지가 분기점이다. 석탄 파이프라인 축소 속도와 NDC 이행 속도 중 어느 쪽이 빠른지가 판단 기준이 된다.

중국이 54개국에 청정에너지 공장을 짓는 속도가 빨라지면, 글로벌 남방의 에너지 인프라 표준이 중국식으로 굳어질 수 있다. 이 흐름이 기후 거버넌스의 규칙 제정 권력을 어떻게 재편하는지 추적이 필요하다.

캘리포니아 등 미국 주 정부와 대기업들의 기후 행동이 연방 탈퇴를 어느 수준까지 상쇄할 수 있는지도 변수다. 연방과 주 사이의 분열이 미국 기후 행동의 실질 방향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