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9일 저녁 7시, 캘리포니아 전력망에 핵발전소 12기와 맞먹는 전력이 흘러들었다. 발전소가 아니라 배터리에서 나온 전기였다. 같은 해 상반기, 이 주의 전력계통에서 태양광은 82%의 날 가스발전을 앞질렀다. 10년 전 셰일가스가 석탄을 밀어냈던 그 각본을, 이번엔 태양광과 배터리가 가스를 상대로 반복하고 있다. 워싱턴이 재생에너지의 발목을 잡으려 애쓰는 동안, 그리드는 이미 답을 내놓았다.

핵발전소 12기 몫의 전기, 배터리에서 쏟아지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지난 6월 16일 내놓은 통계는 단순하지만 무겁다. 캘리포니아 전력계통운영기구(CAISO)에서 2026년 15월 태양광이 하루 발전량 기준으로 천연가스를 앞지른 날이 전체의 82%에 달했다. 20242025년 같은 기간에는 이 비율이 21%에 불과했다. 같은 5개월 동안 태양광 발전량은 전년보다 21% 늘었고, 천연가스 발전량은 60% 줄었다.

설비용량만 보면 가스(29GW)가 태양광(25GW)보다 여전히 크다. 그런데도 실제 발전에서는 태양광이 앞섰다. 워싱턴에서는 내무부가 태양광·풍력 프로젝트 승인을 조이고, 세액공제는 7월 4일로 만료 시한을 앞두고 있다. 정책이 재생에너지를 죄어오는 바로 그 시점에, 시장의 수치는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드 커넥트 배터리가 가스의 야간 근무를 대신하다

이 역전을 가능하게 한 것은 태양광 자체가 아니라 배터리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그리드랩(GridLab)의 에드 스멜로프는 최근 몇 년 그리드에 연결된 배터리가 빠르게 늘어난 것이 “가장 두드러진 변화"라고 인사이드 클라이밋 뉴스에 말했다.

캘리포니아의 배터리 저장 용량은 2018년 500메가와트에서 2025년 중반 1만 6,900메가와트로 불어났다. 2024년 4월부터 2026년 4월 사이에만 79% 늘어 16기가와트에 도달했고, 방전량은 3배로 뛰었다. 3월 29일 저녁의 순간 최고치는 1만 2,293메가와트로, 그 시각 수요의 44%를 배터리 혼자 감당했다.

다만 원자로가 연중 열흘 중 아흐레는 최대 출력으로 돌아가는 것과 달리, 배터리 함대의 최고 출력은 네 시간 남짓 버티면 바닥난다. 다음 날 해가 다시 채워줘야 하는 구조다. 태양광이 낮을 맡고 배터리가 초저녁을 잇는 새로운 교대 근무가 가스가 도맡던 야간 근무 시간표를 잠식하고 있다.

3월엔 가스를, 5월엔 석탄을 — 전국 단위로 번지는 흐름

캘리포니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 집계로 2026년 3월 미국은 재생에너지가 한 달 통째로 천연가스를 앞지른 첫 사례를 기록했다. 두 달 뒤인 5월에는 태양광이 12.8%, 석탄이 12.2%를 차지하며 태양광이 석탄을 앞선 첫 달로 기록됐다. 한때 미국에서 가장 많은 전기를 만들던 석탄은 이제 천연가스, 원자력에 이어 태양광에도 밀려 네 번째로 내려앉았다.

물론 천연가스는 5월에도 37%를 차지하며 여전히 압도적 1위다. 하지만 5년 전인 2021년 5월과 비교하면 석탄의 비중은 19.7%에서 12.2%로 거의 반토막 났고, 같은 기간 태양광은 5.4%에서 12.8%로 두 배 넘게 뛰었다. 캘리포니아의 82%라는 숫자는 고립된 이변이 아니라, 전국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발전원 재배열의 한 단면이다.

2016년 셰일가스가 석탄에게 한 일을, 태양광이 가스에게 하고 있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2007년 미국 전력 생산의 49%를 차지했던 석탄은 셰일가스 붐이 본격화한 뒤 2016년 처음으로 천연가스(34%)에 밀렸다(석탄 31%). 프래킹 기술이 헨리허브 가스 가격을 2008년 배럴당 8.88달러에서 2012년 2.77달러로 끌어내리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가격이 정치보다 먼저 움직인 사례였다. 지금 벌어지는 일도 구조는 같다.

패널 가격과 배터리 원가가 떨어지면서 태양광·배터리 조합이 새 발전 설비 건설의 90% 이상을 차지한 지 여러 해째다. 다만 결정적 차이가 하나 있다. 2016년의 전환은 정치적 순풍 속에서 일어났지만, 이번엔 정면의 역풍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내무부 장관 승인 병목으로 22기가와트 규모의 태양광·풍력 프로젝트를 보류시켰고, 지난해 서명된 예산법으로 세액공제는 7월 4일 이후 새로 짓는 프로젝트부터는 사라진다. 그런데도 PG&E 대변인은 “앞으로 몇 년간 더 효율적이고 저렴한 청정에너지 시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책이 문을 닫으려는 순간에도, 시장은 이미 문턱을 넘어섰다.

캘리포니아조차 가스 발전소의 퇴역을 늦추고 있다

그렇다고 가스가 순순히 물러나는 것은 아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최근 해안가 가스발전소 세 곳의 퇴역 시한을 다시 늦췄다. 개빈 뉴섬 주지사가 이런 연장을 승인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대변인 에린 멜론은 “주의 에너지 계획은 청정에너지 전환을 가속하는 동시에 기후변화 속에서 신뢰성과 요금 부담을 함께 챙기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밝혔다.

배터리의 최대 출력이 네 시간을 넘기지 못하는 한계, 데이터센터발 전력 수요 급증, 전기차·히트펌프 보급에 따른 총수요 증가는 모두 가스에 여지를 남기는 변수다. 세액공제가 사라진 뒤에도 태양광·배터리 건설 파이프라인이 지금 속도를 유지할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82%라는 숫자는 역전이 시작됐다는 증거이지, 역전이 끝났다는 증거는 아니다.

가스 자산의 재평가, 배터리 밸류체인의 확장

발전 가치사슬에서 실질적 손익 주체가 바뀌고 있다. 가스는 설비를 그대로 유지한 채 가동률만 잃고 있어, 유틸리티 입장에서는 자산 감가와 좌초자산 우려가 커진다. 반대로 태양광 모듈·배터리셀 제조사부터 개발사, 계통 통합 사업자까지 이어지는 밸류체인은 투자가 몰리는 구간이다.

세액공제 만료를 앞두고 7월 4일 전 착공을 서두르는 ‘막차 러시’가 단기 수주 증가로 나타날 수 있고, 그 이후엔 프로젝트 파이프라인의 실제 감속 폭이 투자 판단의 핵심 변수가 된다. 유틸리티들은 신규 가스 발전 대신 배터리·분산자원 조합으로 피크 대응 전략을 재편할지를 가늠하는 시점에 서 있다.

️ 연방과 주가 반대로 가는 정책, 신뢰성이 다음 시험대

연방정부의 허가 병목과 세액공제 축소는 향후 프로젝트 파이프라인의 성장 속도를 늦출 잠재적 요인이다. 반면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는 가스발전 퇴역을 유예하면서까지 신뢰성을 함께 챙기려 한다. 연방과 주의 정책 방향이 어긋나는 이 구도는 다른 주에도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조기 경보 지표는 두 가지다. 내무부의 태양광·풍력 프로젝트 승인 재개 여부, 그리고 7월 4일 이후 신규 착공 건수의 급감 여부다. 두 지표가 동시에 나쁘게 나온다면 82%라는 숫자는 정점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도 이어지는 파장 — 배터리는 특수를, 전력망은 숙제를 얻는다

이 역전은 태평양 건너 한국에도 두 갈래 파장을 남긴다. 첫째는 기업이 챙기는 반사이익이다. 미국이 중국산 배터리·태양광 제품에 관세 장벽을 높이고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로 미국산 요건을 강제하자, 그 빈자리를 LG에너지솔루션·한화큐셀·삼성SDI가 메우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한화큐셀 미국법인은 지난 2월 미시간산 배터리와 조지아산 태양광 모듈을 묶어 5기가와트시 규모의 ESS 공급 계약을 맺었다. 삼성SDI도 2조원대 ESS용 배터리를 수주하며 비슷한 흐름을 탔다. 세액공제 축소 논의가 이어지는 만큼 이 온기가 얼마나 갈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한국 배터리·태양광 3사는 지금까지 미국의 정책 혼선 속에서 오히려 자리를 넓혀왔다.

둘째는 한국 스스로 안고 있는 숙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0년 액화천연가스 비중을 25.1%로 예상하면서도,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응하려면 계통의 유연 전원 비중을 현재 31%에서 62%까지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 2038년까지 23기가와트 규모의 에너지저장장치가 필요하다는 계산도 나왔다.

캘리포니아가 배터리로 태양광의 시간적 한계를 메워 가스를 밀어낸 경로는, 한국이 원전·가스 중심 계통에 재생에너지를 얹을 때 똑같이 맞닥뜨릴 유연성 확보 과제를 미리 보여준다.

데이터가 확인한 역전, 아직 끝나지 않은 시험

이 이야기가 남긴 통찰은 셋으로 정리된다. 정책은 재생에너지를 조이려 했지만 시장의 발전 구조는 이미 반대로 넘어갔다. 이 역전은 캘리포니아만의 예외가 아니라 3월의 전국 가스 추월, 5월의 전국 석탄 추월과 같은 흐름 위에 있다. 그리고 이번 전환은 2016년 셰일가스와 달리 정치적 순풍이 아니라 역풍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 사례보다 더 단단한 경제적 논리를 증명한다.

미국 전력시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정책 저항보다 더 강한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셰일가스가 그랬듯, 한번 시작된 가격 우위는 정치적 개입만으로 쉽게 되돌리기 어렵다. 다만 3월 29일 저녁 배터리가 채워준 핵발전소 12기 몫의 전력은 넉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바닥났다. 다음 날 해가 다시 채워줄 때까지, 이 역전이 얼마나 단단히 자리 잡을지는 아직 다 쓰이지 않은 이야기다.

생각해볼 질문

최근 전기요금 고지서를 얼마나 유심히 봤는가? 당신이 사는 지역의 전력이 태양광·가스·석탄 중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한 번쯤 확인해보면 이 기사가 다루는 변화가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니라는 걸 체감할 수 있다.

만약 당신 집에 태양광 패널이나 가정용 배터리를 들인다면, 그 결정이 언제 본전을 뽑을지 계산해본 적 있는가?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지금 겪는 변화는 결국 개별 가정의 이런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주목해야 할 것들

미래 신호 — 세액공제가 사라진 2026년 7월 4일 이후에도 태양광·배터리 착공 속도가 유지되는지가 다음 관찰 포인트다. 속도가 꺾이면 82%는 일시적 정점으로 남을 수 있다.

시스템 영향 — 가스 발전 자산의 가치 재평가 압력이 커지고 있다. 설비는 그대로인데 가동률만 잃는 자산을 유틸리티가 어떻게 회계 처리하는지가 다음 분기 실적에서 드러날 수 있다.

⚖️ 분기점 — 내무부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 승인 재개 여부와 신규 착공 건수 추이가 이 역전의 지속 가능성을 가를 두 변수다.

연결 이슈 — 2026년 3월 전국 단위 재생에너지의 첫 월간 가스 추월, 5월 태양광의 첫 월간 석탄 추월과 같은 궤적 위에 있다. 함께 짚어야 흐름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