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WEF) 2026년 6월 발간한 「Top 10 Emerging Technologies of 2026」 보고서를 통해 다음 5년의 변화를 전망했다. 올해로 14번째를 맞은 이 보고서는 “신흥 기술(Emerging Technology) 목록”을 제시하는 데만 초점을 두지 않는다. 이 보고서는 신규성, 개발 현황, 잠재적 영향, 그리고 정부·산업계·연구기관의 결정이 해당 기술의 사회적 도입 방식을 좌우할 만큼 성숙해졌다는 기준을 근거로 신규 기술 10개를 선정했다.

WEF는 올해 제시된 신흥기술이 “깊은 불확실성(Deep Uncertainty)”의 시대에 등장했다고 본다. 깊은 불확실성 시대에 공급망은 흔들리고, 에너지·식량·보건·디지털 안보 시스템은 더욱 취약해졌으며, 각국은 효율성만큼이나 회복탄력성을 중시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은 더 이상 성장의 장식품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다시 설계하는 도구가 된다. 보고서는 기술적 열린예측(technological foresight)의 목적을 “단기적 과대광고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기회를 붙잡으면서 장기적 함의를 미리 따져보는 것”으로 규정한다. 기술을 성장과 번영, 웰빙이라는 ‘바람직한 미래’의 렌즈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정 과정도 이전보다 더 체계화됐다. 2026년 보고서는 전통적인 전문가 설문 대신 프런티어스(Frontiers)가 개발한 AI 기반 후보 발굴 절차를 활용했다. 대규모 언어모델이 학술 논문과 산업 뉴스 등을 바탕으로 1,200개 이상의 후보 기술을 도출했고, 이를 약 80개로 압축한 뒤 전문가 검토와 자문위원회 논의를 거쳐 최종 10개를 선정했다. 영향도와 사업화 움직임도 함께 평가했다. 이는 신흥 기술 탐색 자체가 이제 AI, 데이터, 전문가 판단이 결합된 미래예측 작업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고서가 담고자 했던 뜻은 분명하다. 기술의 최전선은 개인화, 분산화, 자원 효율화로 이동하고 있다. 암 치료는 환자 한 명의 종양 정보에 맞춰 설계되고, 에너지는 중앙 발전소가 아니라 건물·차량·배터리의 네트워크에서 조정된다. 단백질은 땅과 물에만 의존하지 않고, 리튬은 특정 사막 염호에만 묶이지 않는다. 냉각은 전기 대신 소재의 물리적 성질로 해결되고, 오염물질은 단순히 걸러내는 수준을 넘어 분해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이러한 흐름은 “더 개인적이고, 더 분산되며,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하는” 기술 전환으로 읽을 수 있다.

10대 신흥 기술

에브리싱-투-그리드 에너지(Everything-to-grid energy): 이는 건물, 전기차, 공장, 가전기기 등 전기를 쓰는 자산들이 동시에 전기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다시 전력망으로 보내는 시스템을 뜻한다. 여름 저녁 냉방 수요가 몰리는 순간, 충전된 전기차와 건물 배터리가 전력망을 돕는 식이다. 이 기술은 전력망을 거대한 중앙집중형 설비가 아니라 수많은 지능형 노드의 네트워크로 바꾼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기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에 전력 안정성과 비용 절감, 에너지 회복탄력성을 좌우할 핵심 기술이다.

직접 리튬 추출(Direct lithium extraction): 기존 리튬 생산은 염수를 넓은 증발지에 가둬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물을 증발시키는 방식에 의존해왔다. 직접 리튬 추출은 염수나 지열수, 유전 폐수 등에서 리튬을 화학적·물리적으로 직접 뽑아낸다. 시간은 크게 단축되고 물과 토지 부담은 줄어든다. 배터리와 전기차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 기술은 리튬 공급망의 지리적 편중을 완화하고, 추출과 정제를 가까운 곳에서 묶는 새로운 산업 허브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수동 복사 냉각 소재(Passive radiative cooling materials): 이 소재는 햇빛을 반사하고 열을 특정 적외선 파장으로 우주 공간에 방출해 전기를 쓰지 않고 표면 온도를 낮춘다. 페인트, 지붕재, 창문 필름, 섬유 등에 적용할 수 있어 건물 냉방 수요와 도시 열섬 현상을 줄일 수 있다. 기후변화로 냉방 수요가 급증하는 세계에서 냉각을 에어컨의 문제가 아니라 건축 소재와 인프라 설계의 문제로 바꾸는 기술이다.

PFAS 분해(PFAS destruction): PFAS(per- and polyfluoroalkyl substances)는 물과 열, 화학적 분해에 강해 ‘영원한 화학물질’로 불린다. 기존 정수·필터 기술은 PFAS를 물에서 빼낼 수는 있지만, 결국 다른 장소로 옮겨 보관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PFAS 분해 기술은 이 물질의 핵심인 탄소–불소 결합을 실제로 깨뜨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초임계수, 전기화학, 자외선 촉매 등 여러 방식이 등장하고 있으며, 식수·산업폐수·매립지 침출수의 장기 환경 책임을 줄이는 기술로 주목된다.

정밀 발효(Precision fermentation): 효모, 박테리아, 균류 같은 미생물에 특정 유전정보를 넣어 단백질, 지방, 색소, 의약 성분, 화학 원료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 미생물을 ‘마이크로 공장’으로 쓰는 기술이다. 우유 단백질, 계란 단백질, 화장품 펩타이드, 의약 원료까지 생산 범위가 넓다. 이 기술은 식품 안보를 농지와 기후, 가축 사육 조건에서 일정 부분 분리할 수 있다. 동시에 전통 농업과 축산업의 일자리, 지역경제, 지식재산권 문제를 새롭게 제기한다.

엑소좀 약물 전달(Exosome drug delivery): 엑소좀은 세포가 서로 단백질이나 RNA 같은 정보를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작은 생체 입자다. 이를 약물 운반체로 활용하면 기존 치료제가 도달하기 어려운 세포나 조직, 특히 뇌와 같은 생물학적 장벽 너머로 약물을 전달할 가능성이 열린다. 암, 신경질환, 희귀질환 치료에서 큰 기대를 받는 이유다. 다만 치료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대량생산, 품질관리, 용량 기준, 장기 안전성, 규제 체계가 함께 정교해져야 한다.

개인맞춤형 mRNA 암 백신(Personalized mRNA cancer vaccines): 같은 암 진단을 받은 환자 사이에서 종양의 돌연변이와 면역 반응은 다를 수 있다. 이 기술은 환자의 종양을 분석해 암세포만의 표지를 찾아내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환자별 mRNA 백신을 만든다. 치료의 중심이 “대량 생산된 동일한 약”에서 “한 사람의 생물학적 정보로 설계된 치료”로 이동하는 셈이다. 이는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지만, 고가 치료가 일부 의료체계와 환자에게만 제공될 수 있다는 접근성 문제도 함께 안고 있다.

신약 개발을 위한 양자 시뮬레이션(Quantum simulation for drug discovery): 신약 후보 물질이 단백질과 어떻게 결합하고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예측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다. 기존 컴퓨터는 분자 상호작용을 단순화해 계산했지만, 양자 시뮬레이션은 원자와 전자 수준의 물리 원리에 더 가깝게 모델링한다. 이 기술이 성숙하면 실패율이 높은 신약 개발에서 유망 후보를 더 빨리 걸러내고, 그동안 ‘치료제 개발이 어렵다’고 여겨진 질환에도 접근할 수 있다. 다만 규제기관이 시뮬레이션 결과를 어떤 수준의 증거로 인정할지에 대한 표준은 아직 만들어지는 중이다.

월드 모델(World models): 기존 생성형 AI가 주로 텍스트와 이미지의 패턴을 학습했다면, 월드 모델은 영상, 깊이 센서, 압력, 움직임, 공간 정보 등 물리세계의 데이터를 통합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학습한다. 아이가 물건을 떨어뜨리며 중력을 배우듯, AI가 현실의 동역학을 배우는 것이다. 로봇, 제조, 물류, 기후모델링, 자율시스템에서 활용도가 크다. 하지만 잘못된 세계 가정을 모델 내부에 만들 경우, 실제 현장에서 큰 오류로 이어질 수 있어 검증과 책임 기준이 중요해진다.

격자 기반 암호(Lattice-based cryptography): 양자컴퓨터가 충분히 강력해지면 현재 널리 쓰이는 암호체계 일부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특히 지금 암호화된 데이터를 모아두었다가 미래에 양자컴퓨터로 해독하는 ‘지금 수집하고 나중에 해독’ 위협이 문제다. 격자 기반 암호는 다차원 수학 구조와 노이즈를 이용해 양자컴퓨터에도 강한 암호 기반을 제공한다. 더 나아가 데이터를 직접 공개하지 않고도 계산할 수 있는 동형암호와 결합하면 의료·금융·정부 데이터의 안전한 활용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10대 신흥 기술은 미래를 들여다보는 창

10대 신흥 기술을 하나씩 보면 서로 다른 분야의 혁신처럼 보인다. 그러나 함께 놓고 보면 더 큰 지도가 드러난다. 과학의 무게중심은 점점 실험실에서 모델로 이동한다. AI와 양자컴퓨팅은 약물을 만들기 전에 결합 가능성을 예측하고, mRNA 백신은 환자 종양의 유전정보에서 출발하며, 정밀 발효는 발효탱크를 돌리기 전에 생물학적 경로를 설계한다. 생산의 지리도 달라진다. 리튬은 특정 광산과 염호에만 묶이지 않고, 단백질은 목장과 초지에만 묶이지 않으며, 전력 안정성은 발전소만이 아니라 도시 곳곳의 차량과 건물에서 나온다. 보고서는 이를 생산 능력과 장소의 결합이 느슨해지는 신호로 해석한다.

하지만 신흥 기술로 전망되는 미래가 낙관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는 기술 로드맵보다 더 중요한 긴장으로 신뢰와 접근성을 지목한다. 개인맞춤형 치료는 기존 임상시험 방식으로 평가하기 어렵고, 미생물이 만든 단백질은 소비자의 새로운 신뢰를 요구한다. 수많은 배터리와 차량이 전력망에 연결되려면 데이터 공유와 사이버보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접근성도 마찬가지다. 고가의 맞춤형 암 백신이 부유한 의료체계에만 머문다면 기술은 건강 격차를 줄이기보다 키울 수 있다. 전기차와 가정용 배터리를 가진 사람만 전력망 보상 혜택을 얻는다면 에너지 전환도 불평등을 낳을 수 있다.

결국 신흥 기술은 미래를 맞히는 점괘가 아니라, 미래를 들여다보는 창이다. 그 창으로 보이는 것은 어떤 제품이 성공할지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다. 질병은 더 개인적으로 치료되고, 에너지는 더 분산적으로 조정되며, 생산은 더 적은 자원으로 재배치되고, 데이터는 더 강한 암호 위에서 이동한다. 동시에 기술의 혜택을 누가 먼저 갖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며, 어떤 규칙으로 신뢰를 만들 것인지의 문제가 더 선명해진다.

따라서 이 보고서가 말하는 미래는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기술을 둘러싼 선택이 세상을 바꾼다는 메시지다. 정부의 규제, 기업의 투자, 병원의 도입 결정, 도시의 조달 방식, 연구기관의 표준화 작업, 시민의 신뢰가 함께 작동할 때 이머징 테크는 비로소 사회적 혁신이 된다. 2026년의 10대 이머징 테크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미래는 이미 등장하고 있다. 이제 남은 질문은 그 미래를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공정하게 설계할 것인가다.

보고서 원본은 다음 인터넷 주소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https://www.weforum.org/stories/emerging-technologies/the-top-10-emerging-technologies-of-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