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2050년 세계 인구 65.5%, 약 65억 명이 극심한 물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
기술 효율화가 오히려 불평등과 물 불안정을 키운다는 역설이 확인됐다
반도체·이차전지 용수 수요가 급증하는 한국도 이 문제에서 예외가 아니다
케이프타운의 ‘데이 제로’, 지구 전체의 예고편이 되다
201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은 ‘데이 제로’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상수도가 끊기면 주민들은 하루 25리터의 물을 배급받으러 곳곳의 배급소 앞에 줄을 서야 했다. 도시는 물 사용량을 60%까지 줄이고서야 간신히 위기를 피했다.
그런데 최근 국제학술지 Nature Geoscience에 실린 연구는 이 아슬아슬한 순간이 한 도시만의 예외가 아니라 지구 전체가 향해 가는 만성적 상태라고 말한다. 셩(Sheng) 등 연구진이 내놓은 머신러닝 모델에 따르면, 불평등이 지금처럼 계속 커지는 시나리오에서는 2050년 전 세계 인구의 65.5%, 약 65억 명이 극심한 물 부족에 직면할 수 있다. 더 불편한 발견은 따로 있다 — 기술을 앞세워 효율을 높이는 발전 경로가 오히려 불평등을 키우고 물 불안정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역설이다. 반도체·이차전지 공장의 용수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는 한국에서도, “기술이 있으니 괜찮다"는 안도가 얼마나 위험한 전제인지 이 연구는 묻는다.

물 위기는 왜 다시 ‘부족’이 아니라 ‘불평등’의 문제로 쓰이는가
셩 연구진의 모델은 수십 년치 사회경제 지표와 수자원 데이터를 함께 학습했다. 강수량이나 저수량만 보지 않고, 누가 그 물에 접근할 수 있는지까지 계산에 넣었다.
이 접근은 최근 쌓여온 국제 보고서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유네스코가 발표한 UN 세계 물 개발 보고서 2026은 21억 명이 여전히 안전하게 관리되는 식수에 접근하지 못하고 여성과 소녀가 하루 2억 5,000만 시간을 물 긷는 데 쓴다고 밝혔다. 숫자만 보면 “물이 모자란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두 보고서가 공통으로 가리키는 지점은 다르다. 지구 전체 물의 총량이 아니라, 그 물이 누구의 수도꼭지로 흐르느냐가 문제다.
고파편화 시나리오와 형평 관리 시나리오, 갈림길에 선 20억 명
셩 연구진이 제시한 수치는 두 갈래로 나뉜다. 사회가 지금처럼 불평등을 방치하는 경로(연구진은 이를 ‘고파편화 시나리오’라 부른다)를 걸으면, 2050년 극심한 물 부족 인구는 65.5%, 약 65억 명까지 늘어난다. 2100년에도 이 비율은 62~63% 선에서 크게 낮아지지 않는다.
반대로 자원을 형평하게 나누는 관리 경로를 택하면, 같은 물리적 제약 아래서도 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연구의 핵심 대안이다. 오늘의 21억 명(안전한 식수 미접근)이 30년 뒤 65억 명(극심한 물 부족)으로 불어나느냐, 아니면 그 격차가 좁혀지느냐. 그 차이를 가르는 것은 강수량이 아니라 관리 방식이다.
‘물 파산’ — 효율이 형평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
UN 대학교(UNU) 물·환경·보건연구소는 이 흐름에 이름을 붙였다 — ‘물 파산(water bankruptcy)’. 소장 카베 마다니는 최근 보고서에서 “많은 지역이 수문학적 한계를 넘어서 살고 있고, 많은 핵심 물 시스템이 이미 파산 상태"라고 진단했다.
가계부에 빗대면 이해가 쉽다. 수입(자연적 재충전)보다 지출(사용량)이 구조적으로 많아지면, 아무리 씀씀이를 아껴도 잔고는 결국 마이너스로 수렴한다. 셩 연구진의 발견이 뼈아픈 이유가 여기 있다.
기술 효율화는 이 가계부의 ‘씀씀이 절약’에 해당하지만, 그 절약분이 누구에게 먼저 돌아가는지를 정하는 배분 규칙이 없으면 절약은 불평등을 오히려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미 자본과 기술을 가진 지역·계층이 효율화의 이익을 먼저 흡수하고 남은 부담이 취약 지역으로 전가되는 구조다. “기술이 있으면 언젠가 해결된다"는 오래된 믿음이, 이번 연구가 정면으로 겨냥하는 바로 그 전제다.
형평 관리로 방향을 틀 수 있을까 — 이 경고가 틀릴 수 있는 지점
이 예측이 확정된 미래는 아니다. 셩 연구진 스스로 강조하듯, 형평한 관리를 향한 정책 전환이 충분히 빠르게 이뤄진다는 전제가 충족돼야 고파편화 경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26년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는 물을 이미 지정학적 갈등의 불씨로 재정의하고 있다. 인더스강을 둘러싼 인도·파키스탄, 아무다리야강을 사이에 둔 아프가니스탄·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 사례가 대표적이다. 상류를 쥔 국가가 하류에 물을 나눠줄 유인이 약해질수록, 형평 관리 경로는 더 멀어진다. 반대로 담수화 기술 비용이 빠르게 낮아지거나 유역 국가 간 물 분배 협정이 새로 체결되는 흐름이 나타나면, 고파편화 경로의 속도는 늦춰질 수 있다.
다만 이 연구의 가장 약한 고리는 예측 모델 자체의 불확실성이다. 수십 년 뒤를 내다보는 전망은 새로운 기술 변수나 정치적 결단 하나로 크게 어긋날 수 있다. 이 경고를 읽을 때 함께 감안해야 할 전제다.

️ 물 거버넌스, ‘효율’ 다음 ‘형평’을 설계할 시간
정책 선택지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A안은 지금처럼 공급 확대(담수화·인프라 투자)에 집중하는 길이다. 비용 부담이 크고 그 혜택이 먼저 부유한 지역에 돌아갈 위험이 있다.
B안은 형평 배분 규칙(취약 지역 우선 할당, 산업 용수 총량 관리)을 병행하는 길이다. 도입에 시간이 걸리지만 이번 연구가 제시하는 대안 시나리오에 가깝다. C안은 각국이 개별 대응에 맡기는 현상 유지다. 가장 손쉽지만 WEF가 경고한 지정학적 갈등 위험을 그대로 키운다.
국제사회는 이미 서로 다른 언어로 방향을 정하는 중이다. UN 세계 물 개발 보고서 2026은 형평성을 물 관리의 중심 가치로 못박았고, WEF는 물을 안보·갈등의 자원으로 다룬다 — 같은 위기를 다른 프레임으로 말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반도체·이차전지 공장의 용수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산업 용수와 생활 용수, 농업 용수 사이의 배분 원칙을 지금 정해두지 않으면 훗날 더 큰 사회적 갈등 비용을 치르게 된다. 조기 경보 지표는 명확하다 — 국내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의 용수 확보 계획이 지역 사회의 반발 없이 진행되는지, 국제사회가 물 배분 형평성을 다루는 구속력 있는 협약을 얼마나 빨리 마련하는지다.
물 파산의 청구서, 아직 지불 기한은 남아 있다
이 연구가 남기는 통찰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물 위기는 이제 “얼마나 남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 먼저 가는가"의 문제다. 기술 효율화는 배분 규칙 없이는 불평등을 줄이지 못하고 오히려 키운다. 그리고 그 갈림길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 형평한 관리로 방향을 트는 선택이 지금도 가능하다.
이는 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AI·에너지 등 자원 배분이 걸린 모든 기술 전환에서 반복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 효율의 이익을 누가 먼저 가져가는가.
케이프타운은 2018년 데이 제로를 가까스로 피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가 말하는 파산은 도시 하나가 아니라 지구 전체의 가계부에 관한 이야기다. 잔고가 마이너스로 굳어지기 전, 배분의 규칙을 다시 쓸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생각해볼 질문
당신의 하루 물 사용량을 떠올려보자. 샤워, 세탁, 설거지 — 그 물이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물을 줄이는 것만큼이나, 그 물이 누구에게 먼저 배분되는지도 중요한 질문이다.
만약 당신이 사는 지역에 새 반도체 공장이 들어와 지하수 사용량이 크게 는다면, 지역 농업이나 생활 용수와의 배분을 어떻게 정하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가?
물이 부족한 나라의 아이가 매일 몇 시간을 물 길으러 다니는 대신 학교에 갈 수 있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당신의 하루에서 그만큼의 시간을 빼앗긴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주목해야 할 것들
미래 신호 — “물 파산” 개념이 앞으로 국제 물 협상의 공식 용어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학술적 수사에 그칠지가 다음 관찰 포인트다.
시스템 영향 — 반도체·이차전지·데이터센터의 산업 용수 수요 급증이 형평 배분 논의를 얼마나 앞당기는지 지켜볼 지점이다.
⚖️ 분기점 — 상류 국가의 협력 여부(인더스강·아무다리야강 사례)가 형평 관리 경로와 지정학적 갈등 경로를 가른다.
연결 이슈 — 사하라 이남 물 분쟁 급증(260626-SC-02), EU 식물성단백질연합의 식량안보 전환(260620-IE-02)과 함께 물-식량-기후 복합위기의 흐름으로 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