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3일부터 12일까지 아흐레 사이, 유럽연합은 클라우드·AI개발법(CADA)을 발표했다. 미국 상무부(BIS)는 앤트로픽의 최신 모델에 대한 국적별 접속 차단을 지시했고, 중국은 세계AI협력기구(WAICO) 창설을 재확인했다. 세 사건은 서로 번역 불가능한 어휘로 같은 대상을 규율하려는 시도였고, 그 결과 단일한 글로벌 AI 표준이라는 전제 자체가 구조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워졌다. 이 글은 이 분절을 미래학·포사이트 문헌이 그동안 어떻게 예견해 왔는지, 그리고 예견 문헌과 실제 전개 사이의 간극이 어디서 발생했는지를 비판적으로 종합한다.

아흐레 사이 갈라진 세계, 시나리오는 이것을 보았는가

AI 거버넌스를 다룬 기존 종설들은 대체로 윤리·규제·기술·메커니즘이라는 네 축으로 문헌을 정리해 왔다. 20242025년 사이 발표된 대표적 체계적 문헌고찰만 셋이다. 바툴 등(Batool, Zowghi & Bano)은 지난 10년간의 연구를 3W1H(누가·무엇을·언제·어떻게) 틀로 분석해 AI 거버넌스 논의의 지형을 정리했다. “거버넌스 은하(Governance Galaxy)“라는 이름의 리뷰는 20102024년 문헌 75편을 종합해 AI가 2035년 무렵 인류의 “공동 거버넌스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가설 아래 윤리·규제·기술·글로벌 조정이라는 네 개 주제와 유토피아·디스토피아·분절이라는 세 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AI 거버넌스 플랫폼만을 다룬 또 다른 문헌고찰도 있다.

그러나 이 세 리뷰는 공통적으로 놓친 것이 있다. AI 거버넌스가 실제로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예견하려 했던 미래학·포사이트 문헌, 곧 시나리오 플래닝과 정책 델파이, 예견적 거버넌스 이론을 별도로 평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작 이 방법론 문헌들은 분절을 상당히 정확하게 예견하고 있었다. OECD 전략적 포사이트 부서가 2024년 내놓은 「글로벌 AI 거버넌스의 미래」 배경노트는 안전성과 책임성이라는 두 축의 2×2 매트릭스로 2035년까지의 네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중 “이상적 시나리오"로 명명된 포용적 거버넌스·공동 번영 축의 반대편에는 규제 파편화가 심화하는 경로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밀레니엄 프로젝트는 한발 더 나아가 55명의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한 1단계 연구에 이어, 2035년까지의 범용인공지능(AGI) 거버넌스에 대한 다섯 개의 대안 시나리오를 3단계 연구로 개발 중이며 그 스펙트럼은 실패에서 성공까지 걸쳐 있다.

문제는 이 시나리오들이 “분절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그린 데 그쳤다는 점이다. 2026년 6월처럼 아흐레라는 압축된 시간 안에서 세 개의 서로 다른 법제가 동시에 실효화되는 속도와 형태까지는 짚어내지 못했다. 컴퓨팅 기술의 미래를 탐색하기 위해 시나리오 기법이 어떻게 쓰여 왔는지를 체계적으로 검토한 최근 연구(Barnett, Kieslich, Sinchai & Diakopoulos)도 비슷한 한계를 지적한다. 시나리오 방법론 다수가 정적인 미래상을 제시하는 데는 강점을 갖지만, 규제 기관들이 며칠 단위로 서로 다른 조치를 주고받는 “빠른 상호작용형 분절"을 모델링하는 데는 취약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의 미래 AI 거버넌스를 다룬 정책 델파이 연구 역시 전문가 합의가 수렴하는 지점보다 발산하는 지점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었다고 보고한다. 예견 문헌은 “분절의 방향"은 맞혔지만 “분절의 리듬"은 놓친 셈이다.

아래 표는 세 예견 문헌이 제시한 시나리오 축과 2026년 6월 실제 전개를 나란히 놓은 것이다. 방향성 예측의 성취와 리듬 예측의 한계가 함께 드러난다.

예견 문헌제시한 시나리오 축2026년 6월 실제 전개와의 대조
OECD(2024), 「글로벌 AI 거버넌스의 미래」안전성×책임성 2×2 매트릭스, “포용적 거버넌스·공동 번영"을 이상적 축으로 제시방향은 적중 — 분절 축의 존재는 예견. 다만 세 법제가 아흐레 안에 동시 발효되는 압축된 시간표는 매트릭스에 반영되지 않음
Millennium Project, AGI 거버넌스 시나리오(2035, 3단계 진행 중)55명 전문가 의견 기반, 실패~성공 스펙트럼의 다섯 시나리오장기 지평(2035)에 초점 — 2026년 시점의 단기 충돌은 시야 밖. 시나리오가 다루는 시간 해상도 자체가 상이
“거버넌스 은하” 리뷰(2025)유토피아·디스토피아·분절, 세 시나리오“분절” 시나리오가 실현됐다는 점에서는 적중. 그러나 분절이 미·EU·중 3자 간 “동시다발적 상호 대응"의 형태로 일어난다는 메커니즘은 서술되지 않음

예견적 거버넌스 이론, 왜 에이전트 앞에서 멈췄나

이 간극의 이론적 뿌리는 더 오래된 문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데이비드 거스턴(David Guston)이 2014년 「사회과학연구(Social Studies of Science)」에 발표한 “예견적 거버넌스 이해하기"는 신기술을 관리 가능한 시점에 사회 전반의 역량으로 다루자는 이론으로, 포사이트·참여·통합이라는 세 축을 제시했다. 이 틀은 나노기술 논의에서 출발해 이후 다양한 신흥기술로 확장되어 왔고, 최근에는 규제적 포사이트·규제적 실험·규제적 학습이라는 삼각 구도로 AI 혁신 거버넌스에도 적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이론이 정작 지금 가장 빠르게 통제 공백이 벌어지고 있는 영역, 즉 실행 권한을 가진 AI 에이전트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딜로이트가 24개국 3,23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72%가 에이전틱 AI를 이미 프로덕션 단계에 배치했지만, 성숙한 거버넌스 모델을 갖춘 곳은 21%에 불과하다. 51%포인트에 달하는 이 간극이 “가장 빠르게 커지는 경영 리스크"로 꼽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예견적 거버넌스 이론이 전제하는 “관리 가능한 시점"이라는 창(window) 자체가, 에이전트가 실제 업무를 수행하며 스스로 권한을 행사하는 속도 앞에서 사실상 닫혀버렸기 때문이다. IDC 조사가 AI 파일럿의 88%가 생산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1순위 원인으로 모델 품질이 아니라 거버넌스·데이터 준비·관찰가능성 공백을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도는 이 공백을 뒤늦게 쫓고 있다. EU AI법의 고위험 조항은 2026년 8월 2일 발효되며 사고 보고와 자동 로그 보존, 인간 감독 도구를 법적 의무로 못박았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같은 해 AI 에이전트 표준화 이니셔티브를 출범해 932건의 공개 의견을 수렴했고, 신원 인증과 권한 관리, 감사 로그에 관한 상호운용성 프로파일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감사 로그에 접근할 수 있는 에이전트가 감사 로그를 지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지금, 예견적 거버넌스 이론이 애초에 상정했던 것보다 훨씬 촘촘한 실시간 통제 설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론과 실무 사이의 이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가 “책임 있는 AI를 위한 적응형 거버넌스 프레임워크” 같은 최근 연구로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제안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한국의 이중 지체 — 규제는 사후적, 예견은 공백

한국의 사정은 이 간극을 더 뚜렷하게 드러낸다.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AI 기본법)은 2024년 말 국회를 통과해 2026년 1월 시행에 들어갔다. 고위험 AI를 규율하는 법적 틀은 갖췄지만, 에이전트의 감사가능성이나 행동 로깅 의무 같은 조항은 아직 비어 있다.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에이전트 거버넌스 공백이 한국에서도 그대로 반복되는 셈이다. 금융권에서는 신용평가 모델 같은 핵심 서비스가 ‘고영향 AI’로 분류될 경우 기존 금융감독 규제와의 중복 문제가, 의료권에서는 디지털의료제품법·의료기기법과의 관계 설정이 시급한 과제로 남아 있다.

더 근본적인 지체는 예견 연구 쪽에 있다. 국내 과학기술정책 연구기관들의 검토에 따르면, 생성형 AI 도구를 미래 예견 작업 자체에 활용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이를 정립된 연구 방법론으로 발전시킨 사례는 아직 드물다. 한국은 AI를 규율하는 법제는 갖췄으나 AI 시대의 거버넌스를 예견하는 방법론적 기반은 상대적으로 얇다는 뜻이다. 이 공백은 실사례로 이미 나타났다. 2026년 6월 일본에서는 선거용 AI 챗봇의 편향이 노출됐고, 한국에서도 딥페이크를 이용한 선거 개입 시도가 확인되며 “AI 민주주의 왜곡"의 첫 실사례로 기록됐다. 법이 사건 이후에 대응하는 구조가 계속되는 한, 다음 분절의 리듬도 사전에 읽어내기 어렵다.

무엇을 갖춰야 다음 분절을 예견할 수 있는가

이 리뷰가 종합한 문헌들은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AI 거버넌스에 대한 예견은 “무엇이 분절될 것인가"라는 방향성 예측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냈지만, “얼마나 빠르게, 어떤 순서로 분절될 것인가"라는 리듬의 예측에서는 체계적으로 뒤처져 있다. 시나리오 플래닝과 델파이 같은 전통적 포사이트 도구가 본래 수개월~수년 단위의 구조적 변화를 다루도록 설계된 탓이다. 규제 기관들이 며칠 단위로 서로 대응하는 지금의 속도는 이 도구들의 시간 해상도를 넘어선다.

몇 가지 실행 가능한 이정표를 짚을 수 있다. 첫째, 포사이트 연구 공동체는 기존의 연 단위·분기 단위 시나리오 갱신 주기를 주 단위 “레짐 변화 모니터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이슈 스캐닝처럼 약한 신호를 상시 포착하는 방법론과 장기 시나리오 방법론을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설계가 요구된다. 위 표에서 보듯 OECD·밀레니엄 프로젝트·거버넌스 은하 리뷰는 모두 방향성 예측에서는 성과를 냈지만 시간 해상도가 분기~10년 단위에 머물러 있었다. 둘째, 예견적 거버넌스 이론은 인간 행위자의 숙의를 전제로 설계되었던 만큼, 에이전트가 스스로 권한을 행사하는 상황에 맞춰 “기계 행위자를 포함한 예견적 거버넌스” 이론으로 갱신되어야 한다. 셋째, 한국을 포함한 중견국들은 미·EU·중 3극 사이에서 규제 차익거래의 대상이 되기보다, 자체 예견 역량(호라이즌 스캐닝·시나리오 워크숍)을 국내 AI 기본법의 하위 시행 체계에 제도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넷째, 다음 분절 국면에서 무엇을 관찰할지에 대한 최소한의 공유된 지표, 예컨대 모델 접근권 차단 사례 수나 국가별 고위험 AI 분류 기준의 상호 인정 여부를 미래학 공동체가 선제적으로 합의해 둘 필요가 있다.

AI 거버넌스라는 대상 자체가 몇 주 단위로 형태를 바꾸는 지금, 이 분야를 다루는 미래 연구는 그 대상만큼 빠르게 방법론을 갱신해야 한다는 것이 이 리뷰의 잠정적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