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 일리노이가 프론티어 AI 모델 안전성 감사를 의무화한 세 번째 주가 됐다.
- 비동의 성적 이미지 AI 모델을 걸러내려던 연방 개정안은 정쟁에 갇혔다.
- 연방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이제 한국도 곧 마주하게 된다.
여름 한복판, 서명대 위에 놓인 두 개의 다른 대답
2026년 7월 6일, 일리노이 주지사 J.B. 프리츠커가 「AI 안전조치법」(SB315)에 서명했다. 매출 5억 달러, 연산량 10의 26제곱을 넘는 프론티어 모델 개발사에게 매년 독립적인 안전성 감사를 받도록 의무화하는 법이다. 같은 시기 워싱턴에서는 마크 워너 상원의원이 비동의 성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AI 모델을 연방 기관 시스템에서 제거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국방수권법에 끼워 넣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정작 이란전쟁을 둘러싼 정쟁에 발목이 잡혀 표류하는 신세가 됐다.
연방이 답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주(州)들이 먼저 자기 몫의 조각을 채워 넣고 있다. 프론티어 모델의 위험을 누가,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한국 역시 머지않아 같은 답을 내놓아야 한다.

두 갈래 압박이 같은 여름에 쌓였다
두 조치는 서로 다른 뿌리에서 나왔지만, 같은 압박 아래에서 자랐다. 비동의 성적 이미지 문제는 이미 연방이 한 차례 손을 댄 사안이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유포를 범죄로 규정한 「테이크 잇 다운법」이 먼저 시행됐고 워너 의원의 개정안은 그다음 단계였다. 유포자가 아니라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AI 모델 자체를 연방기관 시스템에서 걷어내려는 시도였다.
반면 일리노이법은 캘리포니아·뉴욕이 먼저 낸 길을 따라간 결과다. 두 주 모두 프론티어 개발사에게 투명성 프레임워크와 사고 보고 의무를 지운 전례가 있다. 일리노이는 여기에 독립 제3자 감사라는 한 단계 더 강한 장치를 얹었다. 위반 시 첫 위반은 최대 100만 달러, 재위반은 최대 300만 달러 벌금이다.
두 사안의 공통분모는 하나다. 연방 의회가 포괄적인 AI 법을 만들지 못하는 사이, 각자 손에 쥔 도구로 대응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오픈AI는 일리노이법을 “국내에서 가장 강력한 프론티어 AI 안전법 중 하나"라고 공개 지지했고 앤트로픽도 지지 진영에 섰다. 규제를 밀어붙인 쪽은 주정부인데, 정작 손뼉을 맞춘 것은 규제 대상인 업계 자신이었다.
워너의 개정안은 왜 이란전쟁에 발목 잡혔나
워너 의원의 개정안 자체는 초당적 반대에 부딪힌 게 아니다. 문제는 그 개정안이 실려 있던 배(船) 전체가 좌초했다는 데 있다. 2026년 7월 14일, 상원은 국방수권법 심의를 시작하는 절차 동의안을 50대46으로 부결시켰다. 60표가 필요했지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민주당이 반대한 이유는 이란전쟁 확전과 이스라엘 관련 조항, 그리고 1조1500억 달러에 달하는 국방예산 규모였다. 상원 원내대표 척 슈머는 “트럼프는 승인도, 전략도, 출구도 없이 이 전쟁을 시작했다"고 비판했다. 워너의 아동성착취물·비동의 이미지 조항, 애덤 시프 의원의 AI 모델 출시 지연 관련 반독점 면책 조항 모두 이 정쟁의 인질이 됐다.
60년 넘게 매년 통과돼 온 이 법안이 발목 잡힌 것은 이번이 최근 두 주 사이 두 번째다. 결국 비동의 성적 이미지 AI 모델을 걸러내겠다는 연방의 의지는 뚜렷했지만, 그 의지를 실행할 통로 자체가 막혀버렸다. 규제 공백은 의도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싸움에 휘말린 부수적 결과에 가깝다.
조각들이 닮아가고 있다 — 세 개 주, 하나의 사실상 표준
연방이 멈춰선 사이, 주정부의 움직임은 오히려 빨라졌다. 2026년 1분기에만 45개 주에서 1561건의 AI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이미 2024년 한 해 전체 발의량을 넘어선 규모다. 백악관 AI 정책 책임자 데이비드 색스는 이를 두고 “50개 주가 50개의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가족연구소(IFS)가 내놓은 반박 리포트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IFS가 분석한 법안 가운데 개발사·배포사에 직접 의무를 지운 법은 12%에 그쳤고, 그마저 소수의 주에만 몰려 있었다. 색스가 말한 대규모 ‘패치워크’는 실제 규모보다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캘리포니아·뉴욕·일리노이 세 주의 법은 투명성 프레임워크, 사고 보고 의무, 제3자 감사라는 비슷한 골격을 공유한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를 “사실상의 전국 컴플라이언스 표준"이라 부른다. 백악관이 “누더기"라 깎아내리는 조각들이, 실은 서로 닮은 무늬로 수렴하고 있는 셈이다.
백악관은 왜 이 조각보를 걷어내려 하는가
이 흐름에 가장 격렬히 반발하는 쪽은 다름 아닌 연방 행정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12월 행정명령 14365호에 서명해 “국가 정책 프레임워크” 수립을 지시했다. 이듬해 3월, 백악관은 실제 프레임워크를 발표하며 주(州) 법 대신 단일한 연방 기준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세 겹의 압박 장치가 딸려 있다.
상무부 장관은 “까다로운” AI 법을 가진 주를 420억 달러 규모 브로드밴드 보급 예산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법무부 안에는 주 AI법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것만이 유일한 임무인 전담 조직도 신설됐다. 이 구조를 지탱하는 세계관은 명확하다. 규제가 흩어져 있으면 혁신도 흩어진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 믿음은 이미 한 차례 시험대에 오른 적이 있다. 2025년 7월, 상원은 예산조정법안에 담겨 있던 주(州) AI 규제 10년 유예 조항을 99대1로 삭제했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들과 여야를 아우른 주 법무장관들까지 한목소리로 반대했던 결과다. 연방이 지금 다시 꺼내 든 선점 카드는, 불과 1년 전 초당적으로 패배했던 바로 그 카드다.
조달과 국방, 두 개의 곁가지 전선
규제 공방은 감사·선점권 논쟁에만 머물지 않는다. 연방조달청(GSA)은 2026년 6월 17일 「AI 시스템 기본 안전조치」 규정을 개정 공고했다. 7월 14일 열린 청취회에서 소프트웨어연합(BSA)은 “정부의 AI 활용 능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며 반발했다. 반대로 엔비디아의 AI 전략가 셰인 셰인먼은 데이터 처리 책임을 개발사가 아니라 시스템 통합사·운영사로 옮겨야 오픈소스 모델도 참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규제 강도를 낮추라는 요구와 참여 문턱을 낮추라는 요구가 같은 자리에서 부딪혔다. 의견 수렴은 8월 3일 마감된다.
국방수권법 쪽 사정도 비슷하다. 표류의 원인은 AI가 아니었지만, 그 안에 실려 있던 AI 조항들은 함께 표류하고 있다. 결국 이번 여름 미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규제 다툼의 상당수는, 애초부터 하나의 각본을 따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계가 우연히 같은 시각을 가리킨 결과에 가깝다.

️ 정책·사회 — 주(州)가 만든 규칙이 사실상의 기본값이 된다
연방 선점 시도가 두 번 연속 벽에 부딪히면서, 주(州) 주도 거버넌스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하나의 제도로 굳어지는 흐름이다. 정책 결정자에게는 두 갈래 선택지가 있다. 연방 표준을 계속 밀어붙이거나, 주(州)들이 만든 감사·보고 골격을 인정하고 그 위에 얹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아동성착취물·비동의 이미지처럼 초당적 공감대가 있는 사안조차 무관한 정쟁에 발목 잡힐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기 경보 지표는 분명하다. 8월 3일 조달 규정 확정 여부, 그리고 국방수권법이 재상정될 때 워너 조항이 살아남는지다.
비즈니스·투자 — 컴플라이언스 비용은 이제 구조적 변수다
프론티어 개발사에게 주별 감사·보고 의무는 더 이상 예외적 리스크가 아니라 매출 계획에 내재해야 할 고정비용이 됐다. 오픈AI·앤트로픽처럼 규제를 먼저 받아들인 기업은 후발 경쟁자보다 신뢰 프리미엄을 확보할 여지가 있다. 반대로 연방 조달 시장을 노리는 기업에게는 연방조달청 규정의 최종 형태가 밸류체인 전체의 진입 문턱을 좌우한다. 오픈소스 모델 개발사·통합사는 데이터 처리 책임 소재가 어디로 정해지느냐에 따라 정부 시장 접근성이 갈린다.
조각보는 걷히지 않았다
연방은 답을 내지 못했고 그 공백을 주(州)가 메웠다. 백악관은 그 조각들을 걷어내려 했지만 1년 전 이미 같은 시도에서 패배한 적이 있다. 이번 여름의 ‘동시다발’은 치밀한 각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싸움들이 우연히 겹친 결과였다.
이 흐름은 미국이 연방제 국가이기에 가능한 특수한 그림이지만, 단일한 중앙정부를 가진 한국에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프론티어 모델의 책임 소재를 정하는 일을 누가, 언제, 어떤 강도로 맡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백악관이 누더기라 부르는 조각들은, 걷어내려는 손길이 닿을 때마다 오히려 더 촘촘하게 짜이고 있다. 이 조각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생각해볼 질문
비동의 성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AI 모델이 있다면, 그 모델을 쓴 사람보다 모델을 만든 회사에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할까? 당신이 피해 당사자라면 어느 쪽에 더 화가 날지 생각해보자.
여러분이 사는 지역과 다른 지역의 법이 서로 다르면 불편할 것 같은가, 아니면 오히려 안전할 것 같은가? 같은 논쟁이 한국에서 벌어진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자.
국가 안보와 무관한 정쟁 때문에, 초당적으로 동의하는 안전 조치까지 표류하는 상황을 본 적 있는가? 여러분의 일상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는지 떠올려보자.
주목해야 할 것들
미래 신호 — 캘리포니아·뉴욕·일리노이의 감사·보고 골격이 앞으로 새로 법을 만드는 주들의 기본 템플릿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연방법 없이도 사실상의 전국 표준이 아래에서부터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분기점 — 8월 3일 연방조달청 규정 확정과 국방수권법 재상정이 겹치는 시점이 다음 분수령이다. 두 사안 모두 연방이 다시 존재감을 드러낼 마지막 기회에 가깝다.
연결 이슈 — 딥페이크 성착취물 규제는 비동의 이미지 AI 모델 논쟁과 뿌리를 공유한다. 향후 연방·주 양쪽에서 관련 입법이 서로를 참조하며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