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세계 기아는 3년째 줄었는데 아프리카만 사상 처음 최대 기아 대륙이 됐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술을 받을 조건이 없어서 벌어진 격차다.
한국도 트랙터는 앞섰지만 밀·콩·옥수수를 심는 밭은 뒤에 남아 있다.
7cm의 정밀함과 1%의 자급률이 같은 나라에 있다
2026년 7월 21일, 유엔 5개 기구가 낸 세계 식량안보 보고서는 좋은 소식으로 열렸다. 굶주리는 사람이 3년 연속 줄어 6억4500만 명이 됐다. 그러나 이 보고서의 진짜 뉴스는 총량이 아니었다. 아프리카가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를 제치고 굶주리는 사람이 가장 많은 대륙이 됐다는 사실이었다.
기묘한 것은 아프리카의 기아 비율 자체는 오히려 낮아졌다는 점이다. 비율은 내려갔는데 사람 수는 늘었다. 인구가 느는 속도가 개선 속도를 앞질렀기 때문이다. 개선을 보고하는 지표가 악화를 가리고 있었던 셈이다.
같은 시기, 농업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정밀해졌다. 위성과 인공지능은 어느 땅에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하는지 꽤 정확하게 짚어낸다. 문제는 그 정밀함이 굶주림의 지도를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도 이 이야기의 바깥에 있지 않다. 국내 트랙터는 스스로 논밭을 달리지만 한국이 먹는 곡물의 약 80%는 여전히 배를 타고 들어온다.

진단서는 공짜가 됐는데, 처방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는다
세계 기아 보고서가 나오기 닷새 전, 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서스테이너블 푸드 시스템스》에 짧은 논평 하나가 실렸다. 모하메드 쇼크르 등 세 연구자가 쓴 이 글은 작물을 실제 토양·물·기후 조건에 맞추는 일, 즉 적지판정을 이렇게 규정했다. “주변적인 기술 작업이 아니라 1차적 결정요인이다.”
이들이 정리한 기술의 현주소는 놀랍다. 무료로 풀린 위성 자료만으로 값비싼 현장조사 없이 땅을 진단할 수 있게 됐고 딥러닝은 기후·토양·수확량 자료를 하나의 위험 점수로 묶어낸다. 진단 도구가 사실상 공공재가 됐다.
그런데 같은 논평이 인용한 메타분석의 결론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2000년부터 2025년까지 실증연구 56편을 모아보니, 가뭄·고온에 강한 품종을 도입한 효과의 크기가 품종 자체가 아니라 제도적 지원과 신용 접근, 시장 연계에 따라 갈렸다. 저자들의 문장은 단호하다. 적지 지수는 “작동하는 과학-정책 접점에 놓일 때만” 식량안보 성과로 번역된다.
위성이 만들어내는 것은 진단서지 처방이 아니다. 진단서를 환자에게 도달시키는 것은 전기와 통신, 신용과 보급조직이다.
아프리카의 13%와 한국의 1.5%는 같은 숫자다
번역기가 없는 곳의 풍경은 숫자로 확인된다. 아프리카 소농 가운데 디지털 영농 서비스를 써본 비율은 13% 남짓이고, 농업용 드론 도입률은 주요 경제권에서도 2~3%에 못 미친다. 사하라 이남의 곡물 단수는 세계 기준선보다 60%가량 낮다.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전기가 끊기고 인터넷이 닿지 않고 장비를 살 신용이 없어서다. 게다가 다른 지역에서 학습된 인공지능 모델은 여러 작물을 섞어 심고 비만 바라보는 아프리카의 작은 밭에서 잘 맞지 않는다.
그 세계 지도를 한국 위에 겹치면 낯선 그림이 나온다. 세계 식량안보 보고서가 나오기 3주 전인 7월 초, 한국에서는 다른 숫자가 보도되고 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지표를 기준으로 한국의 곡물자급률이 2035년 16.8%까지 내려간다는 전망이었다. 2024년 식량자급률은 47.9%,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1.6%로 2022년 이후 해마다 떨어지는 중이다.
한국의 스마트팜 통계에도 아프리카의 13%와 닮은 구석이 있다. 정부 보급사업을 기준으로 하면 시설원예의 14%가 스마트팜이지만 한국무역협회 분석에서는 실질 도입률이 1.5%로 잡힌다. 같은 나라 같은 산업을 두고 통계가 열 배 가까이 벌어진다. 기술의 존재와 기술의 도달은 다른 문제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배치의 문제다.
목표가 격차를 설계한다 — 온실은 35%, 밭은 “기술 하나”
한국은 분명 기술을 가진 쪽이다. LS엠트론이 2021년 국내 최초로 자율작업 트랙터를 내놓은 뒤 대동과 TYM이 차례로 뛰어들었고, 위성 보정 항법으로 잰 작업 오차는 7cm 이내다. 사람이 몰던 것보다 반듯하게 간다.
문제는 이 트랙터가 어디로 가느냐다. 자율작업 트랙터 값은 1억3000만 원 안팎으로, 같은 급 일반 트랙터보다 3000만 원 비싸다.
이 가격표가 만나는 상대를 보자. 2025년 농림어업총조사에서 농가 경영주의 평균 나이는 67.7세였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예순을 넘겼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스마트팜 농가의 생산성이 일반 농가보다 높다고 확인하면서도 자본 부담이 크고 도입 뒤 생산성을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는 단서를 달았다. 기술을 사는 순간부터 이익이 나지는 않는다. 배우는 동안 오히려 뒤처지는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자본과 학습 시간을 감당할 수 있는 농가와 그렇지 못한 농가의 거리는 그래서 기술이 퍼질수록 좁혀지지 않고 벌어진다.
정책 목표 자체에도 기울기가 있다. 제1차 스마트농업 육성 기본계획은 2029년까지 전국 온실 5만5000ha의 35%를 스마트팜으로 바꾸겠다고 못 박았다. 반면 밭작물은 주산지 재배면적의 20%에 “스마트농업 기술을 1개 이상 적용"하는 것이 목표다. 앞은 시설을 통째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이고, 뒤는 기술 한 가지를 얹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곡물자급률을 좌우하는 것은 온실 안의 딸기와 토마토가 아니다. 밖에서 자라는 밀과 콩과 옥수수다. 밀과 옥수수는 국내에서 먹는 양의 1~2%만 자급한다.

1977년의 교훈: 성공한 품목이 실패한 품목을 가린다
이 구조가 낯설지 않은 이유가 있다. 한국은 이미 한 번 겪었다.
1977년 통일벼로 쌀 자급률 113%를 달성했을 때, 단위면적당 수확량은 일본이 갖고 있던 세계 최고 기록을 넘어섰다. 이듬해 수원 농촌진흥청 마당에 ‘녹색혁명 성취의 탑’이 세워졌다.
그러나 그 탑이 기념한 성공의 그늘에서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쌀에 기술과 정책을 몰아넣는 동안 밀·옥수수·콩의 생산기반이 무너졌다. 전체 식량자급률은 1962년 94.6%에서 1980년 69.9%로 주저앉았다.
한 품목의 화려한 성공이 다른 품목의 붕괴를 가렸다. 오늘 시설 스마트팜의 보급률이 노지의 공백을 가릴 수 있는 것처럼.
물론 방향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농촌진흥청은 2024년부터 3년간 약 440억 원을 들여 함양 양파, 당진 벼, 김제 밀·콩 등 아홉 곳에 노지 스마트농업 시범지구를 조성해 왔다. 사업을 이끈 김지성 기술보급과장은 “시범지구가 노지 스마트농업 확산의 본보기가 되도록” 지자체와 협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26년 4월에는 홍성·거창 등 다섯 곳이 노지 스마트농업 육성지구로 뽑혀 자율주행 농기계와 정밀 관수 시설을 먼저 받는다.
방향은 맞다. 다만 규모가 자급률의 기울기를 되돌릴 만큼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노지 실증이 개별 시범지구를 넘어 주산지 전체로 번지고 장비를 개인이 사지 않고도 쓸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이 흐름이 반전된다.
️ 정책·사회 — 보급 면적이 아니라 자급률 기여도를 세야 한다
먼저 성과를 세는 방식을 손봐야 한다. 지금 스마트농업 성과는 보급 면적과 도입 호수로 집계된다. 그러나 세계 식량안보 보고서에서 봤듯, 비율 개선을 보고하는 지표는 실제 악화를 가릴 수 있다.
보급률이 오르는데 자급률이 내려가는 상황을 성과표가 잡아내지 못한다면 지표 설계가 잘못됐다. 품목별 자급률 기여도를 함께 세야 한다.
다음은 소유가 아닌 이용이다. 1억 원이 넘는 장비를 경영주 개인이 사도록 설계된 제도는 평균 나이 예순일곱의 농가 구조와 맞지 않는다. 농협이나 작목반이 장비를 갖추고 농가는 작업 단위로 쓰는 방식이 현실적인 경로다. 정부도 0.5ha 미만 소농을 대상으로 중소농 맞춤형 모델을 국정과제로 다루고 있으나 아직은 시설 중심이다.
마지막은 말 그대로 마지막 1마일이다. 자율주행 농기계가 제 성능을 내려면 농촌에 위성 보정 신호 기준국과 통신망이 먼저 깔려야 하고 서로 다른 회사의 농기계와 작업기가 맞물리는 표준이 있어야 한다. 이 기반이 없으면 개별 장비 보조금은 새는 물통에 물을 붓는 일이 된다.
다시, 7cm의 트랙터 앞에서
세 문장으로 정리된다. 기술은 이미 도착했고, 그것을 받을 조건은 고르지 않으며, 그래서 격차는 좁혀지는 대신 벌어진다. 아프리카에서 그 조건은 전기와 통신이었다. 한국에서는 자본과 나이, 그리고 어떤 품목에 기술을 몰아줄 것인가라는 선택이다.
한국이 지켜봐야 할 지표는 스마트팜 보급 면적이 아니라 밀과 콩의 자급률 곡선이다. 2029년 밭작물 목표가 “기술 1개 이상"에서 얼마나 더 나아가느냐, 그 한 줄이 다음 10년의 식량주권을 가른다.
유엔 식량농업기구 사무총장은 이번 보고서를 두고 “이 숫자들이 중요한 이유는 굶주림이 불가피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불가피하지 않다는 말은, 결과가 선택에 달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진의 논에서 트랙터는 오늘도 오차 7cm로 반듯하게 달린다. 그 정밀함이 어느 밭까지 닿느냐는 아직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정하는 문제로 남아 있다.
생각해볼 질문
마트에서 국산 밀가루를 찾아본 적이 있는가. 한국이 먹는 밀의 99%는 수입산이다. 값이 싸서 좋은 일 같지만 그 가격이 바깥 사정으로 흔들릴 때 당신의 식탁에서 무엇이 먼저 바뀔지 한번 떠올려보면 좋겠다.
당신의 부모나 조부모가 농사를 짓는다면, 1억 원이 넘는 무인 트랙터를 사라고 권할 수 있겠는가. 기술이 좋다는 것과 그 기술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사지 않기로 한 선택이 몇 년 뒤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도 함께 생각해볼 만하다.
주목해야 할 것들
미래 신호 — 진단 기술이 값싸질수록 성과를 가르는 변수는 기술 자체에서 그것을 받는 쪽의 조건으로 옮겨간다. 농업에서 먼저 드러난 이 구조는 의료·교육 등 다른 공공 영역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반복될 수 있다.
⚖️ 분기점 — 2029년까지의 밭작물 목표가 “기술 1개 이상 적용"에 머무느냐, 전환율 목표로 강화되느냐가 갈림길이다. 전자로 굳으면 자급률 하락 추세는 이어지고 후자로 가면 노지가 정책의 중심으로 올라선다.
전략 창 — 노지 스마트농업 시범지구 사업이 2026년으로 조성 기간을 마치고 확산 단계로 넘어간다. 실증 결과가 나오는 지금이 노지 쪽으로 예산과 목표를 다시 배분할 수 있는 시점이다.
연결 이슈 — 사하라 이남의 물 분쟁 증가, 미국 대외원조 축소로 생긴 식량 거버넌스 공백과 함께 봐야 한다. 한국은 곡물의 대부분을 수입하므로, 이들 지역의 생산 불안정이 곧바로 국내 식탁 물가로 옮겨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