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과학자 77만 명의 이력에서 2022년 이후 학제 이동이 늘었고, 효과는 비영어권 중저소득국 연구자에게서 가장 컸다.

같은 데이터에서 팀 안의 역할은 좁아졌다. AI가 밖으로는 다리를, 안으로는 칸막이를 세운 모양새다.

한국은 비영어권이면서 연구 인프라를 갖춘 드문 위치다. 이 신호가 커지면 기회이자 압력이 된다.

가장 멀리 간 쪽은 신진이 아니었다

낯선 결과가 나왔다. AI를 쓰고 가장 멀리 간 쪽은 젊은 연구자가 아니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중저소득국의 기성 연구자였다.

2026년 7월 23일 arXiv에 올라온 이 분석은 새 기술의 성능 보고서가 아니다. 기술이 사람의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갈라놓았는지를 처음으로 대규모로 잰 기록이다.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의 정보대학원 부교수 니차오쿤을 포함한 연구자 네 명이 과학자 775,323명의 논문과 협업 이력을 추적했다. 2022년을 기준으로 앞뒤를 갈라 보니, 연구자들은 자기 분야에서 지적으로 훨씬 먼 곳까지 나가 논문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데이터에서 정반대 방향의 화살표가 하나 더 나왔다. 그 화살표가 한국의 대학원과 연구 평가 제도에 곧장 닿는다.

77만명의 이력이 남긴 두 개의 화살표

첫 번째 화살표는 밖을 향한다. 2022년 이후 연구자들은 이전에 발도 들이지 않았던 분야에 새로 진입했다. 협업 네트워크 자체도 더 학제적으로 바뀌었다.

효과가 가장 두드러진 집단은 두 곳이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기성 연구자, 그리고 영어를 쓰지 않는 중저소득국 연구자다.

두 번째 화살표는 안을 향한다. 연구진은 다저자 논문 137,120편에 붙은 기여 진술을 함께 뜯어봤다. 논문마다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14가지 항목으로 표시하는 목록이다.

2022년 이후 한 사람이 표시한 항목 수는 줄었고 공저자끼리 겹치는 항목도 줄었다. 소프트웨어와 검증을 맡았다는 표시는 늘었고 개념을 세우고 연구를 관리했다는 표시는 줄었다.

논문은 이렇게 맺는다. “팀원들이 더 뚜렷하게 구분된 책임을 맡고 있으며, 연구를 수행할 때 서로에게 덜 의존하게 됐음을 시사한다.”

밖으로는 넓어지고 안으로는 좁아지는 집이다.

논문이 올라오기 2주 앞선 7월 6일, 서울에서도 관련 문서 하나가 배포됐다. 한국연구재단이 펴낸 「대학 연구자를 위한 생성형 AI 연구윤리 가이드」다. 연구 설계와 수행, 보고 단계별로 AI를 어떻게 쓰고 어떻게 인용할지, 연구자가 스스로 점검할 목록까지 담았다.

개인이 지켜야 할 윤리는 정리됐다. 기여와 평가를 어떻게 읽을지는 아직 빈칸이다.

융합을 사람이 아니라 도구에서 조달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단서는 세 번째 발견에 있다. AI로 글을 쓴 흔적이 강한 저자일수록, 연구의 학제성과 공동연구자의 분야 다양성 사이의 연결이 오히려 약해졌다.

예전에 다른 분야로 넘어가려면 그 분야 사람을 공저자로 데려와야 했다. 이제는 그러지 않고도 넘어간다. 다리를 놓아준 것이 사람이 아니라 도구다.

왜 비영어권에서 효과가 컸는지는 이미 계량된 비용이 설명한다. 퀸즐랜드대학교 타쓰야 아마노 연구팀이 과학자 908명을 조사해 2023년 발표한 결과를 보면,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연구자는 언어를 이유로 논문이 거절되는 비율이 영어권의 2.5배를 넘었다. 심사에서 영어를 고치라는 요구를 자주 받는다는 응답은 격차가 12배까지 벌어졌다. 아마노는 이를 “형평성 측면에서 학계의 심각한 문제이자, 과학 공동체에는 막대한 손실"이라고 표현했다.

그 비용을 AI가 깎아주자 채택이 몰렸다. 런던정경대학교 임팩트 블로그가 2026년 6월 정리한 자료를 보면, AI 보조 작성은 2022년부터 2024년 사이 비영어권 국가에서 약 400퍼센트 늘었다. 같은 기간 영어권의 증가폭은 183퍼센트였다.

2027년, 무엇이 움직이면 이 신호는 트렌드가 되는가

이 신호를 키우거나 죽일 변수는 제도 쪽에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2023년 6월 보고서에서 세 가지를 경고했다. 거대언어모델이 “얕은 연구를 더 쉽게 만들고, 저자권과 소유권 개념을 흐리며, 고자원 언어 사용자와 저자원 언어 사용자 사이에 불평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3년이 지나 그중 둘이 숫자로 관측됐다.

문제는 규범이 그 자리에 멈춰 있다는 점이다. 의학학술지편집인국제위원회와 출판윤리위원회의 결론은 여전히 “AI는 책임을 질 수 없으므로 저자가 될 수 없다"에서 끝난다. 공개 의무도 겉돈다. 런던정경대학교 자료에 따르면 저널의 70퍼센트가 AI 사용 공개를 요구하지만, 2023년 이후 나온 논문 가운데 실제로 공개한 것은 1,000편에 한 편꼴이었다.

AI가 저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가 더 이상 읽히지 않는다는 문제다.

낙관을 눌러야 할 반증도 나와 있다. 7년간 논문 20,827편에 붙은 동료심사 76,453건을 분석한 연구에서, 챗GPT 확산 뒤에도 심사자가 비영어권 저자에게 매기는 불이익은 거의 줄지 않았다. 문장이 좋아져도 문 앞의 편견은 그대로 서 있었다는 뜻이다.

️ 기여는 쪼개지는데 평가는 뭉뚱그려진다

한국은 2026년부터 제5차 국가연구개발 성과평가 기본계획을 적용한다. 우수부터 극히불량까지 매기던 평가 등급을 없애고 정량 평가지표도 단계적으로 걷어낸다. 도전적인 연구를 살리자는 방향은 옳다.

다만 시점이 묘하다. 논문 한 편 안에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의 해상도가 떨어지는 바로 그때, 평가는 해상도를 더 낮추는 쪽으로 간다. 등급을 지운 자리에 무엇으로 기여를 읽을지가 아직 설계되지 않았다.

미국 국립보건원 사례가 힌트를 준다. 기여 항목 14가지는 서로 위계가 없어서 분쟁이 붙었을 때 누구 몫이 더 큰지는 끝내 가려주지 못했다.

‍ 문제를 세우는 훈련은 어디서 받는가

개념과 관리 역할이 줄었다는 대목이 가장 아프게 닿는 곳은 대학원이다. 논문 한 편에서 맡는 역할이 좁아지고 그마저 자주 바뀐다면, 연구자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오래 걸리는 훈련, 곧 문제를 스스로 세워보는 경험이 설 자리를 잃는다.

시간표는 이미 나와 있다. 국내 이공계 대학원생은 2025년 101,293명으로 처음 10만 명을 넘어섰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석사과정이 2027년, 박사과정이 2030년 이후 줄어들기 시작해 2050년에는 지금의 60퍼센트 수준이 될 것으로 본다. 규모가 꺾이기 전 3~4년이 훈련의 질을 다시 짤 수 있는 구간이다.

지금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자기 데이터다

정리하면 이렇다. AI는 개인이 넘을 수 있는 분야의 경계를 지웠고, 그 혜택은 언어 비용을 크게 치르던 쪽에 더 많이 갔다. 동시에 같은 도구가 팀 안에서는 각자의 몫을 잘게 나눴다. 두 변화 모두 저자권과 평가라는 오래된 제도 위에서 벌어지는데, 그 제도는 아직 “AI는 저자가 아니다” 한 줄에 머물러 있다.

다음 확인 시점 — 이 연구는 아직 심사를 거치지 않은 사전 공개본이다. 정식 학술지 게재 여부와 심사 과정에서 결과가 어떻게 다듬어지는지가 1차 관문이다. 국내에서는 석사과정 규모가 꺾이는 2027년이 두 번째 시점이다.

확인할 지표 — 기여 항목당 표시 인원의 변화, 특히 개념 항목을 표시한 저자 비율이 계속 줄어드는지를 본다. AI 사용을 공개한 논문 비율이 0.1퍼센트에서 움직이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이 신호가 죽는 조건 — 이번 데이터는 상관관계를 관찰한 것이고, 논문 원문 자료가 생명의학 쪽에 치우쳐 있다. 다른 분야로 넓혀도 같은 방향이 나오지 않거나, 역할 축소가 AI가 아니라 감염병 유행 이후 바뀐 협업 관행 탓으로 설명된다면 이 신호는 접어야 한다.

한국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일은 논평이 아니라 계측이다. 한국 연구자들의 기여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한국은 아직 자기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

생각해볼 질문

연구실이든 회사든, 당신이 속한 팀에서 최근 1~2년 사이 “이건 내 담당이 아니다"라고 말할 일이 늘지 않았는지 떠올려 보자. 각자의 몫이 또렷해지는 것은 효율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또렷함이 서로 배울 기회를 함께 줄이고 있지는 않은지도 같이 물어볼 만하다.

만약 당신이 지금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연구실을 골라야 할까. 논문 편수가 많은 곳과, 지도교수와 문제를 함께 세워보는 시간이 많은 곳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이 5년 뒤의 자신에게 남을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번역기와 문장 교정 도구 덕분에 외국어 장벽이 낮아진 경험이 있다면, 그때 실제로 넓어진 것은 무엇이었는지 되짚어 보자. 읽을 수 있는 자료의 범위였는지, 아니면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의 범위였는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목해야 할 것들

미래 신호 — 학제 융합을 사람 대신 도구로 조달하는 흐름이 굳어지면, 공동연구의 이유가 “역량 보완"에서 “자원과 권한 확보"로 옮겨갈 수 있다. 그때 공동연구자 명단은 협력의 기록이 아니라 계약의 기록에 가까워진다.

⚡ 확산 조건 — 학술지들이 기여 표시를 의무화하고 그 데이터를 공개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이 변화는 더 빨리,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반대로 공개율이 지금처럼 낮게 유지되면 변화는 계속 눈에 띄지 않은 채 진행된다.

시스템 영향 — 연구비 심사와 승진 심사는 여전히 개념 기여를 중심에 두고 사람을 평가한다. 실제 기여 구조가 소프트웨어와 검증 쪽으로 이동하면, 평가 척도와 실제 노동 사이의 간극이 커지면서 누가 저평가받는지가 바뀐다.

연결 이슈 — 아프리카 테크 업계에서 AI 도입과 함께 해고가 236퍼센트 늘어난 사례, 그리고 자율 공격형 AI가 마이크로소프트 버그바운티 상위권에 오른 사례와 같은 계열이다. 전문 역할이 재배치되는 현상이 산업과 학계에서 동시에 관측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