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경영진 54%가 AI 도입이 회사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답했다. 1년 만에 12%포인트 올랐다.

도구는 절반을 넘겼는데 일하는 방식을 다시 짠 회사는 넷 중 하나다. 그 빈칸이 권력 다툼으로 채워진다.

한국은 이 갈등을 교섭장으로 끌고 왔다. 협상 테이블에 AI의 이름이 안건으로 올랐다.

교섭 테이블에 올라온 이름은 ‘글린’이었다

2026년 6월 25일, 제너럴모터스 한국사업장의 임금·단체협약 교섭에 낯선 안건이 올랐다. 사무업무를 돕는 AI ‘글린’이었다. 새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는 통보가 아니었다. 그 프로그램을 어디까지 쓸지 노사가 함께 정하자는 요구였다.

노조는 “AI가 노동자 평가, 생산성 분석, 정보 수집 등에 활용될 경우 인권침해와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사전 설명과 협의 절차를 요구했다. 회사는 사내 정보를 찾아주는 보조 수준이고 생산 인력을 대체할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같은 도구를 놓고 두 개의 이야기가 맞섰다.

한국만의 사건이 아니다. AI 기업 라이터(WRITER)가 조사기관 워크플레이스 인텔리전스와 함께 미국·영국·프랑스·독일·호주의 경영진과 직원 2,400명을 조사한 결과, 경영진 54%가 “AI 도입이 회사를 갈가리 찢고 있다"고 답했다. 1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42%였다. 갈등은 줄지 않고 커졌다.

다른 점은 처리 방식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이 갈등은 해고 통보와 조용한 태업으로 개인에게 흩어진다. 한국에서는 협상 테이블 위에 문서로 올라온다.

개인은 이득을 보는데 회사는 보지 못한다

같은 조사에서 가장 이상한 숫자는 갈등 수치가 아니었다. 직원 97%가 AI로 개인적인 이득을 본다고 답했는데,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고 답한 기업은 23%에 그쳤다. 거의 모두가 이득을 보는데 조직은 그 이득을 손에 쥐지 못한다.

이득이 어디서 사라지는지는 경영진 스스로 알고 있다. 응답자 75%가 자기 회사의 AI 전략을 실질보다 보여주기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사람 대신 일을 처리하는 AI 대리인을 두면서 감독 계획이 없다고 답한 경영진도 36%였다. 전략은 발표되고 도구는 배포되는데, 그 도구가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부서 사이의 긴장은 그 공백에서 자란다. 78%가 정보기술 부서와 현업 부서 사이에 긴장이 생겼다고 했고, 55%는 사내 AI 사용이 무질서한 난장판이라고 답했다. 규칙이 없는 자리는 규칙 대신 힘으로 채워진다.

AI를 도입할지의 문제가 아니다. 도입한 다음 무엇을 다시 짜는지의 문제다.

도구는 절반을 넘었지만 조직은 넷 중 하나만 움직였다

딜로이트 AI연구소가 여섯 개 산업권의 경영진과 기술 책임자 3,235명을 조사한 결과는 이 시차를 정면으로 보여준다. 회사가 승인한 AI 도구를 쓸 수 있는 직원 비율은 1년 만에 40% 미만에서 약 60%로 올랐다. 보급은 빠르게 진행됐다.

그런데 시험 삼아 돌린 사업의 40% 이상을 실제 업무로 넘긴 기업은 넷 중 하나였다. 사업 방식을 깊이 바꿨다고 답한 곳은 셋 중 하나, AI 대리인을 2년 안에 도입할 계획이면서 그것을 감독할 규칙이 갖춰졌다고 답한 곳은 다섯 중 하나에 그쳤다.

여기서 이 국면의 성격이 드러난다. 최고 사양의 장기를 이식하고 거부반응을 막는 약을 주지 않은 것과 같다. 능력을 주지 않은 채 채택만 요구하면 몸은 새 장기를 침입자로 취급한다.

맨파워그룹의 2026년 조사에서 전 세계 노동자 56%가 최근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고 57%는 조언을 구할 선배가 없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AI 숙련도를 묻는 항목을 넣자 기술에 대한 자신감이 급락했다.

그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이미 숫자로 나와 있다.

실직이 두려워 AI를 망가뜨리고, 그래서 해고 위협이 커진다

직원 29%가 회사의 AI 계획을 의도적으로 방해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Z세대에서는 44%까지 올라간다. 방해의 형태는 지침을 무시하거나 교육을 거부하거나 도구 사용을 거부하는 수준에서, 승인받지 않은 공개 AI에 사내 정보를 넣거나 성과 지표를 손대는 수준까지 걸쳐 있다. 가장 많이 꼽은 이유는 일자리를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경영진의 대응은 압박이다. 60%가 AI를 못 쓰거나 쓰지 않으려는 직원을 해고할 계획이라고 답했고 77%는 그런 직원을 승진에서 제외하겠다고 했다. 69%는 이미 AI와 관련된 해고가 있었다고 밝혔다.

같은 경영진의 4분의 3은 직원의 태업이 회사의 미래를 위협한다고 걱정한다. 두려움이 태업을 낳고, 태업이 해고 위협을 부르고, 그 위협이 다시 두려움을 키운다. 고리가 스스로 돌아간다.

보상 격차는 이 고리에 속도를 붙인다. 워크플레이스 인텔리전스의 댄 슈어벨은 AI를 능숙하게 쓰는 직원들이 “승진과 임금 인상을 함께 받은 경우가 약 3배 많았다"고 밝혔다. 이들이 아끼는 시간은 주당 9시간 가까이로, 도입이 늦은 직원이 아끼는 2시간과 크게 벌어진다. 같은 회사 안에서 두 개의 경력 경로가 갈라지는 셈이다.

압박하는 쪽도 편하지 않다. 최고경영자 73%가 AI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61%는 이 전환을 이끌지 못하면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한다. 자기가 보여주기라고 평가한 전략을, 자리를 걸고 해고로 집행하는 구조다.

라이터의 최고경영자 메이 하비브는 사람과 AI가 함께 일하는 방식을 중심에 놓고 업무를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하는 데 공을 들이는 리더들이 우위를 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작업을 하는 회사가 아직 소수라는 점이다.

컴퓨터도 조직을 다시 짠 뒤에야 생산성이 됐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우는 1987년 “컴퓨터 시대는 어디에서나 보이지만 생산성 통계에서만은 보이지 않는다"고 썼다. 기업이 컴퓨터에 막대한 돈을 쏟던 시기, 통계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숫자가 움직인 것은 기업이 기존 공정을 더 빨리 돌리는 대신 컴퓨터를 중심으로 업무 자체를 다시 짜기 시작한 뒤였다.

지금의 지표는 그 구간의 반복처럼 읽힌다. 미국 경제조사기관 전미경제연구소가 2026년 2월 미국·영국·독일·호주 경영진 6,000명을 분석한 결과, 약 90%가 지난 3년간 AI가 고용이나 생산성에 측정 가능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답했다.

쓰지 않아서가 아니다. 3분의 2가 AI를 쓴다고 답했다. 다만 실제 사용 시간이 주당 1.5시간이었다. 도구는 책상에 놓였지만 업무의 중심으로 들어오지는 못한 상태다.

같은 경영진들은 앞으로 3년간 AI가 생산성을 1.4%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전망이 현실이 되려면 조건이 하나 붙는다. 도구 보급이 아니라 업무 재설계와 감독 규칙이 그 사이에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그 빈칸을 다른 방식으로 채우려 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2026년 4월 월간 노동리뷰에서 AI 도입을 노사가 함께 협의하도록 법에 명시하자고 제안했다. 근로자참여법이 협의 대상으로 정한 ‘기술상의 사정’과 ‘신기술’ 항목에 AI를 예시로 넣는 방안이다. 양승엽 연구위원 등 연구진은 “근로자의 알 권리는 법문으로 보장해, 협의나 단체교섭에 필요한 AI 기술 관련 정보를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장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금속노조는 2026년 임금·단체협약 요구안에 노동영향평가를 넣었다. AI를 들이기 전에 고용과 노동조건에 미칠 영향을 노사가 함께 평가하자는 내용이다. 노사정 대화에서도 인력 재교육과 직무 변화 대응을 포함한 여섯 가지 과제에 의견이 모였지만 구체적 합의까지는 가지 못했다.

반대 논리도 뚜렷하다. 일률적인 협의 절차가 기술이 바뀌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기업 사이 격차를 벌리며 도입을 늦추는 협상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성과를 가르는 변수는 모델이 아니라 조직 설계다

성과를 거둔 23%와 나머지를 가른 것은 어떤 모델을 골랐느냐가 아니다. 도구를 들인 뒤 업무 순서와 결정 권한을 다시 짰는지, 그리고 그것을 감독할 규칙을 먼저 세웠는지다. 투자를 검토하는 쪽에서는 회사가 밝히는 AI 예산 규모보다 그 예산 안에 조직 재설계와 교육에 배정된 비율을 보는 편이 실질에 가깝다.

AI 대리인이 늘어나는 국면에서 감독 계획이 없다고 답한 36%는 실제 위험이다. 사람의 결정과 AI의 결정이 섞인 뒤에 사고가 나면 책임 소재를 되짚기 어렵다. 부서 간 긴장 78%라는 숫자도 조직 문화 문제로만 볼 수 없다. 누가 도구를 고르고 누가 데이터를 쥐는지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신호다.

‍ Z세대 44%는 능력 부족이 아니라 경로 불안이다

Z세대의 방해 비율이 전체 평균보다 높은 것을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세대의 역설로 읽으면 답을 놓친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도구가 아니라 경력의 첫 칸이다. 초급 업무가 자동화될 때 사라지는 것은 일감만이 아니라 경험을 쌓을 자리다.

동시에 능숙한 사용자에게 붙는 3배의 승진 확률은 세대 안쪽의 격차를 벌린다. 같은 연차에 입사해도 도구를 먼저 익힌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거리가 몇 년 안에 회복하기 어려운 폭으로 벌어질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도구 사용법 강의가 아니라 초급자가 AI와 함께 일하며 판단력을 쌓도록 업무를 설계하는 일이다.

거부반응은 장기의 결함이 아니다

세계 경영진 절반 이상이 회사가 갈라지고 있다고 인정하는 국면인데, 그 원인은 기술 성능이 아니었다. 도구는 절반을 넘어 퍼졌다. 일하는 방식을 다시 짠 조직은 넷 중 하나였고 그 사이의 빈칸은 부서 간 힘겨루기와 조용한 태업으로 채워졌다. 개인은 이득을 보는데 회사는 보지 못한다는 역설이 그 결과다.

한국이 볼 지표는 분명하다. 근로자참여법 협의 항목에 AI가 실제로 들어가는지, 그리고 노동영향평가가 단체협약 문구로 남는지다. 이 두 가지가 움직이면 갈등의 처리 장소가 개인의 책상에서 협상 테이블로 옮겨진다.

솔로우의 관찰이 남긴 교훈은 기술이 결국 성과가 된다는 낙관이 아니었다. 조직을 다시 짜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성과가 되지 않는다는 경고였다. AI의 문제가 아니다. 이식 절차의 문제다.

‘글린’을 어디까지 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 답을 누가 쓰는지가, 다음 3년의 성과를 가른다.

생각해볼 질문

회사가 새 AI 도구를 쓰라고 했을 때, 당신은 무엇을 먼저 확인하고 싶었는가. 그 도구가 당신의 업무 속도를 재고 있는지, 그 기록이 평가에 쓰이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는지 떠올려 보면 좋다. 물어볼 창구가 있었는지가 실은 더 중요한 질문이다.

업무 시간을 아껴주는 도구를 익혔을 때, 그 시간은 누구의 것이 됐는가. 남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이 배정됐다면 도구는 당신의 편이 아니었을 수 있다. 아낀 시간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정하는 것이 도구를 고르는 일보다 앞선다.

후배나 자녀가 첫 직장에서 AI에게 초급 업무를 넘기는 상황이라면, 어떤 조언을 하겠는가. 빨리 익히라고 권할 수도 있고, 그 일을 직접 해보며 판단력을 쌓으라고 권할 수도 있다. 두 조언은 자주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주목해야 할 것들

⚖️ 분기점 — 이 분석의 핵심 근거는 AI 기업이 후원한 조사이고, 응답은 모두 본인이 답한 내용이다. 갈등이 실제보다 크게 보고됐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딜로이트의 별도 조사와 전미경제연구소 분석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방향 자체가 뒤집힐 여지는 좁다.

시스템 영향 — 협의 절차가 법으로 들어오면 AI 도입 일정 자체가 바뀐다. 도구를 고르는 단계부터 노사가 함께 앉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 사이에 도입 속도 차이가 생기고, 그 차이가 성과 격차로 나타날지 지연으로 나타날지가 다음 관찰 대상이다.

전략 창 — 2026년 임금·단체협약 시즌이 지나기 전이 규칙을 만들 창이다. 개별 사업장 협약이 쌓이면 그것이 사실상의 기준선이 되고, 뒤늦게 법을 손대는 쪽은 이미 만들어진 관행을 따라가게 된다.

연결 이슈 — 도입 기업의 상당수가 AI 사업을 접었다는 생산성 역설 관측, 그리고 생성형 AI의 일자리 충격이 신입에게 집중된다는 관측과 같은 계열이다. 세 신호가 겹치는 지점이 정확히 조직 안에서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