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돌아왔다. 하지만 세계 경찰로서가 아니다. 자신의 뒷마당을 단속하는 ‘집주인’으로서다. 2026년 유라시아 그룹이 3대 리스크로 꼽은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은 트럼프(Donald)와 몬로(Monroe)의 합성어이자, 미국의 대외 전략이 ‘글로벌 개입’에서 ‘반구적(Hemispheric) 지배’로 근본적으로 전환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본 기사는 200년 전의 독트린이 어떻게 AI와 리튬 시대의 패권 전략으로 재해석되었는지, 그리고 이것이 라틴 아메리카와 글로벌 기업들에게 던지는 최후통첩을 분석한다.

200년 묵은 독트린의 ‘거래적’ 부활

1823년, 제임스 몬로 대통령은 유럽 열강을 향해 “아메리카 대륙에 손대지 말라"고 경고했다. 2026년 1월, 백악관은 이 메시지를 베이징을 향해 다시 쏘아 올리고 있다. 단, 이번에는 고상한 외교 문서가 아닌 ‘관세’와 ‘투자 제한’이라는 실탄이 장전되어 있다.

유라시아 그룹(Eurasia Group)이 발표한 ‘Top Risks 2026’ 보고서는 이를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이라 명명했다. 핵심은 명확하다. 미국은 더 이상 우크라이나나 중동의 진흙탕에 발을 담그고 싶어 하지 않는다. 대신 멕시코의 공장, 칠레의 리튬, 브라질의 시장을 미국의 배타적 경제권으로 묶어두려 한다. 이는 단순한 고립주의가 아니다. 북미와 남미를 하나의 거대한 ‘자원-제조 요새’로 통합하여, 유라시아 대륙(중국-러시아 연대)에 대항하겠다는 ‘거시적 요새화(Macro-Fortification)’ 전략이다.

왜 지금 서반구인가?

이 전략적 전환의 기원은 ‘니어쇼어링(Nearshoring)‘의 한계에서 비롯되었다. 2025년까지 기업들은 공급망을 중국에서 멕시코로 옮겼지만, 미국 정부는 곧 깨달았다. 멕시코에 들어선 공장의 상당수가 중국 자본 소유였음을(우회 수출).

동시에 ‘자원 안보’가 화두로 떠올랐다. 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EV)에 필수적인 구리와 리튬의 대부분이 안데스산맥에 묻혀 있다. 중국이 일대일로(BRI)를 통해 남미의 항구와 광산을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오자, 미국은 이를 더 이상 ‘자유 시장의 문제’가 아닌 ‘안보 침해’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돈로 독트린’은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했다. 미국에게 라틴 아메리카는 더 이상 ‘방치된 이웃’이 아니라, 반드시 사수해야 할 ‘전략적 생명선’이다.

당근 없는 채찍의 시간

유라시아 그룹의 분석과 현재 미 행정부의 움직임을 종합하면, 이 전략은 3단계 로드맵으로 진행된다.

Phase 1: USMCA의 무기화 (2026 상반기)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재검토(Review) 과정에서 ‘원산지 규정’을 극단적으로 강화한다. 부품의 물리적 생산지뿐만 아니라, 자본의 국적까지 따지겠다는 것이다. 이는 멕시코 내 중국 기업들에게 “짐을 싸거나, 지분을 팔라"는 통보다.

Phase 2: 자원 동맹 강요 (2026 하반기)

‘아메리카 리튬 파트너십(Americas Lithium Partnership)‘과 같은 양자 협정을 통해, 남미의 핵심 광물이 중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쿼터제로 제한한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 시장 접근권을 내건다.

Phase 3: 인프라 클린업 (2027~)

남미 국가들의 5G 네트워크와 항만 인프라에서 화웨이(Huawei) 등 중국 기업을 배제하도록 압박한다. 이를 거부하는 국가(특히 브라질, 콜롬비아 등 좌파 정부)에게는 관세 폭탄과 원조 중단이라는 징벌적 조치가 가해진다.

주권(Sovereignty)의 충돌

정치·경제적 렌즈로 볼 때, 돈로 독트린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게 ‘강요된 양자택일’을 의미한다.

o 정치적 딜레마: 브라질의 룰라(Lula)나 멕시코의 셰인바움(Sheinbaum) 같은 지도자들은 전통적으로 ‘비동맹 중립’을 표방하며 미-중 양쪽에서 이득을 취해왔다. 그러나 돈로 독트린은 이 ‘헤징(Hedging)’ 전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은 남미의 정치 지형을 친미 블록과 반미 블록으로 쪼개놓고 있다.

o 경제적 블록화: 세계 무역은 이제 완전히 쪼개졌다. 서반구 내부의 무역 장벽은 낮아지지만, 서반구와 외부(특히 아시아) 사이의 장벽은 20세기 냉전 시절보다 높아진다. 이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구조적 원인이 된다.

이 거대한 도박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시나리오 A: 요새의 완성 (Fortress Americas) - [성공 경로]

미국의 거대한 내수 시장 매력에 굴복한 남미 국가들이 중국과의 관계를 축소한다. 멕시코와 칠레가 북미 공급망에 완전히 통합되며, 서반구는 에너지와 식량, 광물을 자급자족하는 가장 안전한 경제권으로 부상한다. 이 경우, 미국 경제는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위기(대만, 우크라이나 등)로부터 격리(Insulation)되는 효과를 누린다.

시나리오 B: 반발과 균열 (Backlash & Fracture) - [실패 경로]

미국의 고압적인 태도(Bullying)가 역풍을 부른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남미 국가들이 “제2의 제국주의"라 비난하며 중국과 더욱 밀착한다. 중국은 이에 호응하여 남미에 군사 기지 건설을 시도하고, 2026년 말 ‘쿠바 미사일 위기’의 경제 버전을 초래한다.

와일드카드: 멕시코 카르텔의 세력이 국가 통제력을 넘어서며 국경 위기가 통제 불능에 빠지는 경우. 이때 미국은 경제 제재를 넘어선 ‘물리적 개입(군사 작전)‘을 감행할 수 있으며, 이는 남미 전체를 반미 연대로 묶는 트리거가 된다.

한국 기업의 생존법은?

한국 기업들에게 돈로 독트린은 ‘초대장’이자 ‘청구서’다.

Supply Chain Shift: 배터리, 자동차, 반도체 기업은 이제 ‘생산 기지’뿐만 아니라 ‘원자재 공급망’까지 서반구 내부로 옮겨야 한다. 단순히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을 넘어, 그 공장에 들어가는 리튬과 구리를 칠레나 페루에서 조달하는 ‘완결형 서반구 밸류체인’을 구축해야 한다.

Lobbying Point: 한국은 미국에게 ‘중국을 대체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임을 강조해야 한다. 미국의 남미 인프라 구축(건설, 통신) 사업에서 중국 기업의 빈자리를 한국이 채우는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다.

이웃인가, 인질인가

2026년의 돈로 독트린은 1823년보다 훨씬 정교하고, 잔인하다. 제임스 몬로는 유럽의 간섭을 막기 위해 ‘펜’을 들었지만, 2026년의 미국은 중국을 몰아내기 위해 ‘시장 접근권’이라는 목줄을 쥐고 있다. 서반구의 국가들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미국의 ‘보호’를 받는 요새의 거주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요새 밖에서 미국의 분노를 마주할 것인가. 유라시아 그룹의 경고처럼, “중립의 공간은 사라졌다.”


[주목해야 할 것들]

미래 신호: 미국 정부가 파나마 운하의 운영권이나 보안에 직접 개입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이다. 이는 남미 물류 통제권 확보의 상징적 사건이 된다.

⚖️ 분기점: 2026년 하반기 예정된 USMCA 재검토 회의에서 멕시코가 중국산 전기차 공장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가 독트린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다.

전략 창: 남미 국가들이 미국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제3지대 파트너’로 한국과 일본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이 틈새를 파고드는 ‘Diplomatic Gap-Filling’ 전략이 유효하다.

[전략가의 질문]

o 귀사의 공급망 중 “서반구 밖에서 조달되어 서반구로 들어가는” 물량의 비중은 얼마인가? 그 비중만큼이 ‘지정학적 리스크’다.

o 만약 멕시코가 미국의 압박에 반발하여 관세 전쟁을 시작한다면, 귀사의 북미 생산 기지는 안전한가?


[한 페이지 요약]

전략: 2026년, 미국은 글로벌 경찰(Global Policeman)에서 서반구의 관리자(Hemispheric Manager)로 외교 안보 전략을 대전환했다. 유라시아 그룹은 이를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이라 칭하며, 라틴 아메리카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축출하고 자원과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요새화하려는 전략으로 정의했다.

중심 메카니즘:

무역의 무기화: USMCA 등 무역 협정을 통해 중국 자본이 투입된 제품의 미국 진입을 원천 봉쇄.

자원 봉쇄: 리튬, 구리 등 핵심 광물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고 미국 우선 공급을 강제.

인프라 퇴출: 항만, 통신 등 남미 핵심 인프라에서 중국 기업 퇴출 압박.

**리스크 & 임팩트:**이 전략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게 치명적인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정치적 반발(Backlash)로 인해 오히려 중남미가 중국과 밀착하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는 서반구와 유라시아가 분절되는 ‘무역 블록화’가 심화되며, 이는 글로벌 공급망의 효율성을 낮추고 비용을 상승시키는 구조적 요인이 된다.

사업을 위한 조치: 기업들은 이제 ‘Global Supply Chain’이 아닌 ‘Regional Supply Chain’을 구축해야 한다. 북미 시장을 겨냥한다면, 원자재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과정을 서반구 내에서 해결하는 ‘Local-to-Local’ 전략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