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지금 거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의 파고 속에서 기술은 더 이상 산업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을 결정짓는 무기가 되었다. 우리는 이 냉혹한 시대를 건너갈 ‘나침반’을 가지고 있는가?
미래 전문지 <The Futures>의 창간을 맞아, 우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미래 전략가인 KAIST 이광형 총장을 만났다. 그는 지금을 땅의 지정학(Geopolitics)이 아닌, 기술이 곧 영토이자 주권이 되는 ‘기정학(Techno-politics)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역사를 모르면 미래도 없다"며 공학자로서 이례적으로 역사와 철학을 파고든 그는, AI 시대의 생존법으로 ‘소버린 AI’와 ‘인문학적 통찰’을 동시에 주문했다. 대전 KAIST 총장실에서 그가 그려낸 대한민국의 10년 후 청사진을 공개한다.

KAIST 홍보실 제공 사진을 이미지 처리
미래를 읽는 눈: 미래 리터러시와 기정학
Q1. 역사는 미래를 보는 거울 총장님께서는 저서 《미래의 기원》을 통해 “역사학이 곧 미래학이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AI와 첨단 기술이 급변하는 2026년의 시점에서, 왜 우리는 다시 ‘역사’라는 오래된 도구를 통해 미래를 들여다봐야 하는지, 총장님이 정의하시는 ‘미래 리터러시’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행동 패턴은 반복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업이 인재를 채용할 때 이력서를 살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과거의 행적을 통해 그 사람의 미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죠. 국가나 사회의 미래를 조망할 때, 이 ‘이력서’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역사’입니다.
역사가 반복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환경은 변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합니다. 그렇기에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나 그리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인간 군상, 혹은 조선시대의 궁중 정치가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주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미래 리터러시(Future Literacy)‘란 미래를 내다보고, 미래 지향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습관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사고를 현재에 고정하지 않고, 시공간을 확장해 미래를 내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Q2. 기정학(技政學) 시대의 필연 기술 현재를 지정학(Geopolitics)이 아닌 기술이 곧 권력인 ‘기정학(Techno-Geopolitics)의 시대’라고 정의하셨습니다. 미·중 패권 전쟁 사이에서 한국이 생존하기 위해 확보해야 할 기술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야흐로 국제정치에서 기술의 중요성이 절대적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미·중 갈등의 본질 역시 중국의 기술 추격에 대한 미국의 견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인도를 보십시오.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가졌지만, 독자적인 핵심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제 무대에서의 발언권은 국력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러한 기정학의 시대에, 한국은 지정학적 불리함을 기술력으로 상쇄하고 있습니다. 반도체와 조선 등 한국이 보유한 ‘필연 기술’들은 세계 경제와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독보적인 기술력이 없었다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며 G7 정상회의와 같은 글로벌 리더십 그룹에 초청받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기술은 이제 생존의 문제입니다.”
AI 시대의 휴머니즘과 교육
Q3. AI 철학연구센터와 인문학 지난 1월, 대표적인 공학 대학인 KAIST에 ‘AI 철학연구센터’를 개소하신 점이 인상적입니다. 기술 개발 속도전이 치열한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AI와 인간의 관계’와 ‘철학’을 먼저 화두로 던지시게 된 배경과 절박함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KAIST는 과학기술 연구를 통해 인류 문명을 최전선에서 개척해 나가는 기관입니다. 선두에 서 있다는 것은,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이 인류 문명을 어디로 이끌고 가는지 명확히 인지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AI가 고도화될수록 역설적으로 평화로운 휴머니즘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철학적 성찰이 절실해집니다. 인문학은 과학기술이라는 거대한 배가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입니다. 기술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Q4. 질문하는 인간(QAIST) 평소 “공부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는 파격적인 조언과 함께, 정답보다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AI가 모든 답을 즉각 제시하는 시대에, 우리 미래 교육의 핵심은 ‘지식 습득’에서 어떤 능력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이제 AI가 거의 모든 문제의 해답을 찾아주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바로 ‘문제를 찾아 정의하는 일’입니다. AI를 포함한 모든 도구를 사용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며, 무엇이 불편하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느끼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미래 교육은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질문하는 능력’, 즉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능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KAIST가 강의실 수업 비중을 줄이고 현장 경험 중심의 교육으로 이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책상 위보다 현장에 진짜 문제와 질문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혁신과 다음 세대를 위한 제언
Q5. 한국 미래학의 발전 방향 KAIST에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설립을 주도하고, ‘사단법인 미래학회’ 초대 학회장을 역임하시는 등 미래학의 학문적 토양을 다지는 데 헌신하셨습니다. 이제 태동기를 지난 한국의 미래학이 단순한 예측을 넘어 국가 전략으로 기능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미래학은 중장기적 예측을 전제로 국가의 거시적 담론을 제시하는 학문입니다. 한국 사회는 역동적이지만, 그만큼 단기적인 현안과 정책에 매몰되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미래학의 역할이 그 어느 나라보다 중요한 곳이 바로 한국입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국회미래연구원’이라는 전문 연구기관, 학자들의 구심점인 ‘(사)미래학회’, 그리고 인재 양성 기관인 ‘미래전략대학원’이라는 3대 인프라가 갖춰졌습니다. 여기에 최근 미래학 전문 컨설팅 기업들이 생겨나고, 이번에 전문 미디어인 <The Futures>까지 창간되었습니다. 이 주체들이 연대하여 꾸준히 미래 지향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면,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의미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Q6. 미래를 대하는 태도 저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별에서 빛난다》를 통해 경쟁에 지친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셨습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불안해하며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The Futures>의 청년 독자들에게, ‘미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구상 80억 인구 중 ‘나’와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나는 그 자체로 고유하며,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옆 사람과 나를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캄캄한 어둠이 마치 알 수 없는 우리의 미래처럼 막막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는 수십억 개의 별이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별들은 옆에 있는 별을 쳐다보거나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만의 온도로 고유한 빛을 낼 뿐입니다. 우리 청년들도 각자의 빛깔로 빛날 수 있습니다. 나만의 별을 믿으십시오.”
Q7. 창간 매체에 대한 당부 <The Futures>는 급변하는 기술과 불확실한 국제 정세 속에서 미래를 전망하고 대비하기 위해 창간되었습니다. <The Futures>가 한국 사회의 망루가 되기 위해서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당부 말씀 부탁드립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단기적 이슈에 휩쓸리기 쉬운 한국 사회에서 ‘미래 리터러시’를 높이는 것은 시급한 과제입니다. 학문적 연구와 일반 대중 사이의 간극을 좁혀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언론의 힘입니다. <The Futures>가 시민들에게는 미래를 보는 눈을, 전문가들에게는 소통의 장을 제공하는 가교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창간은 우리 사회에 매우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Q8. 독자를 위한 메시지 마지막으로 <The Futures> 창간호를 접하게 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과 총장님께서 소망하시는 ‘미래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인지 듣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일상에서 내리는 작은 결정들이 모여 훗날 거대한 미래의 차이를 만듭니다. 미래를 생각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The Futures>를 통해 독자 여러분이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 매 순간 ‘미래 지향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미래를 꿈꾸며 변화할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추격하는 나라’에서 ‘미래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 [Who is?] 미래를 기획하는 ‘괴짜 총장’, 이광형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꽃이 핀다.” 컴퓨터공학자이자 미래학자. TV를 거꾸로 놓고 보며 고정관념 깨기를 즐기는 일명 ‘괴짜 교수’로 유명하다. 1세대 벤처 창업가들의 ‘대부’이자, 대한민국에 ‘미래학’을 학문의 영역으로 정착시킨 선구자로 통한다. 현재 KAIST 제17대 총장으로서 ‘QAIST(질문하는 인재)’ 육성과 ‘기정학(技政學)’ 담론을 주도하며 대한민국의 미래 전략을 그리고 있다. ■ 학력 서울대학교 산업공학 학사 KAIST 산업공학 석사 프랑스 응용과학원(INSA de Lyon) 전산학 박사 ■ 주요 경력 제17대 KAIST 총장 (2021~현재) (사)미래학회 창립 및 초대 학회장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설립 주도 및 겸직교수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설립 (학과장 역임) 대통령 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 국회미래연구원 이사 ■ 주요 업적 & 키워드 벤처의 대부: 넥슨·아이디스 CEO 등 한국 IT 벤처를 배출한 스승. 융합의 개척자: 전산학과 교수 시절, 바이오와 ICT를 결합한 ‘바이오및뇌공학과’를 신설하고, 한국 최초로 미래전략대학원을 설립. 혁신의 아이콘: KAIST 뉴욕 캠퍼스 추진, 실패연구소 설립, AI 철학연구센터 개소(2026) 등 파격적인 행보 지속. ■ 주요 저서 《미래의 기원》(2024) 《우리는 모두 각자의 별에서 빛난다》(2023) 《세상을 보는 3차원의 눈》(2008) 등 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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