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standalone="yes"?><rss version="2.0" xmlns:atom="http://www.w3.org/2005/Atom"><channel><title>미래연구 자료 on 퓨처스 Futures</title><link>/ko/portals/%EB%AF%B8%EB%9E%98%EC%97%B0%EA%B5%AC-%EC%9E%90%EB%A3%8C/</link><description>Recent content in 미래연구 자료 on 퓨처스 Futures</description><generator>Hugo</generator><language>ko-KR</language><lastBuildDate>Thu, 12 Feb 2026 21:29:27 +0900</lastBuildDate><atom:link href="/ko/portals/%EB%AF%B8%EB%9E%98%EC%97%B0%EA%B5%AC-%EC%9E%90%EB%A3%8C/index.xml" rel="self" type="application/rss+xml"/><item><title>미래 쇼크(Future Shock): 속도의 희생양이 되어 온 인류의 미래를 예언하다</title><link>/ko/articles/cm-110/</link><pubDate>Thu, 12 Feb 2026 21:29:27 +0900</pubDate><guid>/ko/articles/cm-110/</guid><description>&lt;p&gt;&lt;em&gt;미래는 이미 도착했지만, 우리의 신경계는 아직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다.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1970년작 《미래 쇼크(Future Shock), 한글 번역본: 미래의 충격》는 단순한 예측서가 아니라, 과속하는 문명에 치인 인류를 위한 &amp;lsquo;부검 보고서&amp;rsquo;다. 생성형 AI가 1초 만에 논문을 써내는 2026년, 우리는 토플러가 경고한 &amp;lsquo;변화라는 질병&amp;rsquo;의 만성 환자가 되었다. 이 책을 다시 펼치는 것은 과거를 회상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겪는 현기증의 근원을 진단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미래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깔려 있다.&lt;/em&gt;&lt;/p&gt;</description></item><item><title>H.G. 웰스의 "예견(Anticipations)": 최초의 미래학자가 설계한 위험한 청사진</title><link>/ko/articles/cm-97/</link><pubDate>Thu, 05 Feb 2026 19:42:12 +0900</pubDate><guid>/ko/articles/cm-97/</guid><description>&lt;p&gt;&lt;em&gt;우리는 흔히 미래를 &amp;lsquo;꿈꾸는 것&amp;rsquo;이라 착각하지만, H.G. 웰스에게 미래는 &amp;lsquo;계산하는 것&amp;rsquo;이었다. 1901년 출간된 《예견(Anticipations)》은 《타임머신》, 《우주 전쟁》, 《달 세계 여행》의 작가가 쓴 또 다른 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시도된, 철저히 데이터와 인과율에 기반한 미래학(Futures Studies)의 교과서다.&lt;/em&gt;&lt;/p&gt;
&lt;p&gt;&lt;em&gt;웰스는 20세기의 도래를 앞두고 고속도로망의 확산, 교외(Suburbs)의 탄생, 그리고 공군력이 지배할 총력전을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히 맞췄다. 하지만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적중률 때문만이 아니다. 기술적 효율성을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그의 위험한 제안—&amp;lsquo;뉴 리퍼블릭(New Republic)&amp;rsquo;—이 오늘날 실리콘밸리가 묵시적으로 추구하는 기술 관료주의(Technocracy)와 섬뜩하게 닮아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125년 된 미래 예측서가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가장 날카로운 거울이다.&lt;/em&gt;&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Sketch for a Historical Picture of the Progress of the Human Spirit)</title><link>/ko/articles/cm-88/</link><pubDate>Mon, 19 Jan 2026 22:04:07 +0900</pubDate><guid>/ko/articles/cm-88/</guid><description>&lt;p&gt;&lt;em&gt;죽음의 문턱에서 미래를 찬양하는 것이 가능한가? 자코뱅의 공포 정치 속에 은신하며 자신의 사형 집행일을 기다리던 후작 콩도르세는, 절망 대신 인류의 무한한 완성 가능성을 펜 끝에 담았다. 1795년 사후 출간된 이 기획서는 단순한 역사 서술을 넘어, 데이터와 이성이 결합하여 사회를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amp;lsquo;예측적 사유&amp;rsquo;의 시초를 열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2025년의 전략가들에게 콩도르세는 기술적 낙관주의가 단순한 희망 사항이 아닌, 철저한 이성적 훈련의 결과여야 함을 준엄하게 가르친다.&lt;/em&gt;&lt;/p&gt;
&lt;h2 id="공포-정치의-한복판에서-피어난-이성의-등불"&gt;공포 정치의 한복판에서 피어난 이성의 등불&lt;/h2&gt;
&lt;p&gt;18세기 말 프랑스는 계몽주의의 꽃이 혁명이라는 폭력적 열매를 맺던 격동의 현장이었다. 수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니콜라 드 콩도르세는 귀족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대열에 합류했으나, 온건파인 지롱드당에 속했다는 이유로 로베스피에르 일파의 추적을 받게 된다. 9개월간의 도피 생활 동안 그는 단 한 권의 참고 서적도 없이 자신의 기억력에 의존해 인류 문명사의 대서사시를 집필했다. 이 책은 그가 &lt;strong&gt;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기 직전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자, 이성이 결국에는 광기를 이길 것이라는 처절한 믿음의 증거&lt;/strong&gt;였다.&lt;/p&gt;</description></item><item><title>유토피아(Utopia) -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찾는 영원한 이정표</title><link>/ko/articles/cm-64/</link><pubDate>Fri, 16 Jan 2026 12:10:08 +0900</pubDate><guid>/ko/articles/cm-64/</guid><description>&lt;p&gt;&lt;em&gt;인간의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먼 지점이자, 동시에 단 한 번도 발을 디디지 못한 땅인 &amp;lsquo;유토피아&amp;rsquo;는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 문명의 가장 강력한 이정표로 기능하고 있다. 토머스 모어가 1516년 세상에 내놓은 이 도발적인 텍스트는 단순한 환상 문학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모순을 해체하고 인류의 가능성을 재정의하려 했던 치밀한 지적 설계도이다. 초단기적 이익과 기술적 가속도에 매몰된 21세기의 전략가들에게 이 책은 &amp;ldquo;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어디인가?&amp;ldquo;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체제 설계자로서의 책임감을 일깨운다.&lt;/em&gt;&lt;/p&gt;</description></item><item><title>뉴 아틀란티스(New Atlantis) - 지식이 권력이 되는 세상을 설계하다</title><link>/ko/articles/cm-46/</link><pubDate>Mon, 12 Jan 2026 17:23:11 +0900</pubDate><guid>/ko/articles/cm-46/</guid><description>&lt;p&gt;&lt;em&gt;&amp;ldquo;아는 것이 힘이다(Scientia potentia est)&amp;ldquo;라는 베이컨의 명제는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거대한 엔진의 시동키였다. 1627년 사후에 출간된 《뉴 아틀란티스》는 인류가 자연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구축해야 할 &amp;lsquo;지식의 성채&amp;rsquo;를 묘사한 최초의 기술 유토피아 선언문이다. 기후 위기와 AI 혁명이라는 전 지구적 난제 앞에서, 우리는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 &amp;lsquo;기술을 어떻게 조직화하고 문명의 목적에 부합시킬 것인가&amp;rsquo;라는 베이컨의 400년 전 질문에 다시 응답해야 한다.&lt;/em&gt;&lt;/p&gt;
&lt;h2 id="경험론의-아버지가-그린-과학적-구원의-시나리오"&gt;경험론의 아버지가 그린 &amp;lsquo;과학적 구원&amp;rsquo;의 시나리오&lt;/h2&gt;
&lt;p&gt;17세기 초반 유럽은 고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권위와 중세 신학의 도그마가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던 거대한 전환기였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영국 국왕의 대법관(Lord Chancellor)으로서 정치적 실무의 정점에 있었지만, 동시에 인류의 지적 토대를 완전히 재구축하려는 &amp;lsquo;대전혁(Great Instauration)&amp;lsquo;을 꿈꾼 야심가였다. 그는 추상적인 논리에만 매몰된 스콜라 철학을 비판하며, &lt;strong&gt;관찰과 실험을 통해 자연의 비밀을 캐내는 &amp;lsquo;귀납법&amp;rsquo;이야말로 인류를 빈곤과 질병에서 구원할 유일한 길&lt;/strong&gt;이라고 확신했다.&lt;/p&gt;</description></item></channel></rss>